‘대전의 빅벤(Big Ben)’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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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빅벤(Big Ben)’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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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6-07 00:00
  • 이규희 향토사학자이규희 향토사학자
1901년 8월에 경부선 철도부설 기공식이 거행되고 대전역(大田驛) 설치령이 공포되었다. 1904년 12월엔 경부선 전체가 준공되었고, 1905년 1월 마침내 개통되었다. 초기 대전 역사(驛舍)는 간이역 형태의 목조 기와지붕 형식의 건물이었으나 대합실에는 상당한 크기의 벽시계가 걸려 있었다.

기차와 그 시계를 구경하기 위해 유성 진잠 산내 회덕 지역 주민들까지 30리 길을 걸어서 대전역을 찾아왔다. 그 문명의 이기(利器)에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감탄하며 자랑스러워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필자는 어릴 적에 어르신들한테 들었다.

시간은 금이라고들 한다. 또한 시간은 약속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것은 만고불변의 법칙이다. 1925년 9월 서울 역사가 준공 될 무렵 아마 대전 역사도 준공되었다. 절충주의 양식의 이 건물들은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이후 태어난 현대식 건물로, 그 문화재정 가치가 매우 높았다. 그래서 서울 역사는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대전역은 물론 서울 부산 대구 역사(驛舍)의 상징은 바로 건물 정면 벽에 있는 대형 벽시계였다. 지금은 오직 서울역 구건물의 ‘파발마’시계만 하루 24시간 오가는 사람들에게 시각을 알려주고 있다.

대전의 상징이던 대전역 벽시계는 1945년 8월 광복 후에도 대전시민들과 왕래객들의 사랑을 받았었다. 1946년 대전역 앞마당에 을유광복 기념비를 시민헌금으로 준공하며 만세를 부르던 순간에도 대전시민의 머리 위에서 대전역 시계는 돌아가고 있었다. 1950년 7월 21일 대전이 인민군에 의해 점령당할 때도 어김없이 시간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의 비극은 대전역 시계에도 닥쳐왔다. 1950년 8월 인민군 전선에 보급품을 실어 나르는 기차를 중단시키기 위해 미공군이 대전역을 폭격했었다.

오키나와에서 발진한 33대의 B29 중폭격기가 무려 4시간 동안 대전역을 폭격했다. 아름답고 편리했던 대전역사의 모든 건물이 불과 4시간만에 사라졌다. 대전역의 시계도 운명을 같이 했다. 우리나라 역사에 귀중한 그 시각을 현대적으로 알려주었던 그 시계가 영원히 볼 수 없는 추억 속의 낭만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끝나고 나서 대전역사 복구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신축건물 벽에는 어김없이 새 시계가 걸려 있었다.

대전경찰서의 정오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 통금예비·통금실시·통금해제의 사이렌 소리가 고장으로 작동할 때도 대전 시민의 시계는 가고 있었다. 당시에는 야간 기차를 타러오는 사람이 대전역 광장에는 통금이 해제되어있어 신문지를 깔고 누워 시계를 쳐다보고 시간을 맞춰서 기차에 승차하기도 하고 서울이나 부산 쪽에서 호남선으로 교차하기 위하여 오는 승객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대전역 시계가 어느날 사라져 버렸다. KTX 개통으로 신축 역사가 들어서면서 대전역 시계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철도청의 무관심이 대전시민의 애환을 함께 해온 대전의 역사요 대전의 상징이었던 대전역 시계의 운명을 고하게 만들었을까? 대전역 앞 해방기념비가 슬그머니 보문산 속으로 옮겨져 시민들의 눈 속에서 사라지더니 이젠 대전역 시계마저 볼 수 없게 되었다. 철도청이 복원하지 않고, 대전시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대전시민의 애환과 역사를 간직하였던 대전역 시계는 영원히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영국 하면 떠오는 것 중 하나는 런던의 의회의사당 시계탑의 빅벤(Big Ben)이다. 대전역 시계는 대전시민에겐 빅벤이었다. 대전역 시계는 시간만 알려주는 단순한 시계가 아니라 6·25라는 상흔의 역사를 시민과 함께 한 대전의 얼굴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역사가 일천하다고 여겨지는 대전에 또 하나의 소중한 유물(遺物)이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박성효 대전시장 당선자도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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