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순택 논설위원 |
조명이 눈부신 경기장이 스펙터클이었듯 거리도 광장도 더불어서 스펙터클이었다. 수 백만 명의 붉은 물결이 거리와 광장을 메우는 광경을 우리 아닌 어느 다른 나라에서 본 적이 있는가. 지구촌이 처음 보는 그 황홀하고 장엄했던 광경, 활화산처럼 폭발했던 에너지는 돌이켜 생각해도 가슴이 뛴다.
기억이 생생하다. 6월18일 대전월드컵경기장. 이영표의 발을 떠난 공이 예리한 포물선을 그리며 이탈리아 골문 앞으로 비행했다. 빗장수비의 숲 가운데서 안정환이 솟아올랐다. 갈기머리가 흩날렸는가.
머리에 맞은 공은 진행방향을 바꾸었고, 골키퍼의 다이빙을 피해 골문 오른쪽, 생명선을 힘차게 뚫으며 8강이라는 신천지로 우리를 데려갔다. 목청이 터져라 환호하며 이름도 모르는 옆 사람을, 대전을, 이 나라를, 국민을,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되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게 그토록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나는 그 뜨거웠던 현장에 있었던 것을 내 생애의 즐거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다시 이 땅이 붉게 물들고 있다. 영산홍 빛깔보다 더 진한 빨강으로 뒤덮여 가고 있다. 4년 전의 영광과 열광을 다시 누리려는 사람들의 열망이 들끓다 못해 넘쳐서 흐르는 중이다. 지금 한국인들은 또 한 번 날고 싶다.
우리는 거꾸로 살았다. 그 무한한 잠재력과 자신감, 투혼과 열정의 국민적 에너지를 국민 통합과 화합으로 ‘업그레이드 한국하자’던 기대는 1년도 채 가지 못했다. 위에서는 아마추어리즘이 곳곳에 횡행하고 아래서는 집단이기주의라고 할까, 나만 옳다는 목소리만 아우성치고 있다.
정부는 갈등을 오히려 부추긴다. 갈등을 드러내는 건 좋다. 언젠가 터질 갈등이라면 일찍 드러내 치유하는 게 나중을 위해서도 좋다. 드러냈으면 이해관계를 잘 따져 꼼꼼히 꿰매야 뒤탈이 없다. 임기응변 식으로 ‘그까이거 대충’ 꿰매놓으니 터지고 또 터져서 갈기갈기 찢기는 것 아닌가.
“열정과 헌신으로 진정한 축구정신을 일깨운 태극 전사들”(프랑스 르몽드지) “한국은 아시아를 벗어나 이제 세계의 호랑이로 도약했다”(요미우리)고 대서특필하던 해외 언론도 고개를 돌렸다. “한국 사회는 분열되고 파편화돼 미래에 대한 새로운 전망과 대안 세력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르몽드지), “국정 정체상태는 피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니혼게이자이) 대박이 쪽박되는 건 이처럼 순식간이다.
그 날이 그리운 건 당연하다. 너와 내가 없고, 남녀노소도 없었으며, 지역이나 빈부의 차도 없었던 그 날. 다시 한번 하나로 똘똘 뭉치고 싶고, 차갑게 식어버린 가슴에 열정을 지피고 싶은 것이다.
대한민국 월드컵 전사들이여. 그대들 어깨 위에 스포츠 정신 외에 다른 무거움을 얹어주어서는 안 된다는 거 안다. 4년 전처럼 4강에 오르거나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그 것처럼 좋은 일은 없다. 그렇지 못하더라도 끈질기고 집요한 모습이면 족하다. 다만 오늘 우리 국민이 느끼는 침울함을 실어 긴 센터링을 날려 다오. 어려움 앞에서 결속하는 우리의 마음을 담아 슛을 때려 다오.
마음 같아선 최소한 두 경기는 이겨주면 좋겠다. 한 번은 2002년 그 때의 감동을 되살리기 위해서, 한 번은 그 감동으로 2006년 신화를 새로 쓸 수 있도록.
그리하여 월드컵 전사들이여. 그대들이 차는 공은 직경 22㎝의 둥근 축구공이 아니다. 우리의 절통한 가슴을 매만지고 바닥을 알 수 없는 절망감을 쓰다듬어 희망을 잃지 않게 해줄 그런 꿈이다. 축구가 보여준 국민적 응집력과 그 폭발적 힘은 우리에게 지금 절실한 가치다. 그대들이 차는 것은 축구공보다 더욱 크고 둥근 우리들의 꿈이다.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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