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보리밭 사이로 굼벵이나 지렁이들이 젖은 몸을 꿈틀대면서 빡빡한 흙 사이로 숨구멍을 틔워주었고 그래서 암울한 시국에서도 그 순간만은 싱그러운 풍경을 물씬 느낄 수 있었다. 보리밭 앞에 선 청년도 그 때까진 비분강개하면서도 순수함을 간직했던 것 같다.
75년 그해 유월은 흑인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의 한국 땅 방문으로 온통 난리가 났었다. 섬나라 프로레슬러 이노키와의 격투기 대결을 싱거운 무승부로 끝낸 그가 한반도를 방문한 것이다. 매스컴들이 ‘기회는 찬스다’ 하며 포문을 열자 군중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제3공화국의 절정에 이른 서슬 퍼런 권력의 시대, 순진한 군중들은 엉뚱한 곳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었다.
그는 도심지 바닥을 무법자처럼 휘저으면서 아무 여자나 끌어안고 입을 맞추려했다. 여자들이 기겁하여 도망치면, ‘소 팔러 가는데 개 따라 가듯’ 수행 무리들이 배꼽을 잡고 플래시를 터뜨렸다. 흑백TV의 소용돌이에 빠진 군중들은 평화시장의 전태일 얘기를 꺼내면 일제히 귀를 틀어막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여기저기서 숨 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골방에 모여 책을 읽은 사람들이 귀 막은 인파 사이에 나타나 간간히 김지하나 김민기 같은 이름을 술상에 올렸다. ‘창작과 비평’과 ‘뿌리 깊은 나무’를 펴다가 서늘함에 놀라 끼리끼리 수런대기도 했다. 스무 살 울울청년은 암담함 속에서도 비장한 기대감으로 설레곤 했던 것이다.
87년 유월. 마침내 군중들의 함성이 봇물처럼 터지기도 했다. 대전역 광장부터 중앙로까지 시위대의 거센 행렬이 이어졌다.
최루탄과 돌팔매 사이에서 지친 젊은이들이 아스팔트 그늘에서 땀방울을 훔쳐내면 매끄런 빌딩 사이에서 넥타이 부대들이 쏟아져 나와 대신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광주항쟁 이후 도저히 넘어갈 것 같지 않던 엄청난 장벽이 격렬한 군중들의 스크럼에 밀려 기우뚱대는 순간이었다. 까마득한 날부터 그 해 유월까지, 정말 숱한 사람들이 응달진 곳 찾아 왼손 몰래 오른손으로 씨를 뿌린 결실이었다. 그랬다. 한겨울 모진 칼바람을 견디면서 봄날이 올 때까지 보리의 근성으로 끈덕지게 버텼다.
하여, 사람들은 아픔을 먹고 웃자란 보리대궁과 함께 어깨를 걸고 오랜만에 역사의 실체로서의 자기 확인을 할 수 있었다. 밟힐수록 꼿꼿하게 서더니 남보다 빨리 결실을 만들고 배고픈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주던 보리밭. 그래서 꺼럭은 거칠지만 단 맛을 내고 또 꺼럭끼리 부딪치면서 풋풋한 바람을 터뜨리기도 한다.
그 보리밭이 지금은 사라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세상도 변했다. 영양가를 먹고 자란 젊은이들은 포풀러처럼 후리늘씬하고 피부도 크림으로 만든 것처럼 뽀송뽀송하게 변했다. 시청 앞을 채웠던 ‘저항하는 군중’들은 월드컵 붉은 악마로 변신해 ‘대-한민국’ 즐거움을 만끽한다.
알리와 이노키가 벌였던 희대의 격투기가 날마다 지상파를 타고 더욱 잔혹하게 방영되는 중이다. 파킨슨병에 걸린 알리가 성화 봉송할 때면 안쓰러운 눈빛을 보내기도 하지만 기실 요즘 군중들은 인터넷과 인스턴트에 길들여져 있다. 그만큼 조급하다.
핸드폰이 터지지 않으면 노여움을 참지 못하고 빨간 신호등 앞에서도 클랙슨 빵빵 눌러댄다. 클랙슨에 놀란 보리밭 개구리들이 갈라진 보금자리 찾아 아스팔트를 건너려다 바닥에서 즉사한 채 자동차 바퀴에 수만 번씩 깔리곤 한다. 웰빙의 21세기는 그만큼 위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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