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같이 어두운 밤, 장대같이 내리쏟는 장마 속 새벽을 틈타 북한군이 38선을 침범했을 때 남한에서는 장병들이 일요일 휴무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소련제 전차와 장갑차를 앞세워 북한군이 기습작전을 벌이는데 무방비 상태의 아군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북한군이 물밀듯 수도 서울을 압박하자 한강다리를 폭파하고 대전으로 수도를 옮겼다가 사흘을 못 넘기고 최후 방어선을 낙동강으로 옮기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사상 유례없는 인명의 피해와 재산손실, 전국토가 초토화되고 말았습니다.
압박과 설움에 겨웠던 36년 간의 일제 치하에서 해방이 되었으나 우리는 스스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해 외세의 영향으로 국토가 분단되고 이념대결의 전선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회한의 질곡 우리는 왜 그때 차분하게 대처하지 못했을까? 공산주의, 민주주의가 무엇이고 소련, 미국이 누군데 그들 때문에 조국분단이라는 천추의 한을 남긴 것을 생각하면 가슴 아플 따름입니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세간에 떠돌던 “미국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라”는 말이 사실이 된 어처구니없는 현실 앞에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해적기질 있는 섬나라 일본, 제국주의 군벌들이 대 동아권(東亞圈) 맹주를 노리고 저지른 세계 제2차대전에서 미국이 선제공격을 받았지만 물자전쟁으로 전세를 만회하여 다 이기게 되었는데 소련이 끼어 들어 공동 승리국이 된 것이 화근입니다.
태평양 진출의 꿈을 꾸고 있던 소련에게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소련은 재빨리 북한에 진주하여 일본군 무장해제를 시키고 북한을 공산위성국화 했던 것입니다. 정작 일본의 항복을 받은 미국은 남한정부를 수립케 함으로써 민주주의의 보루로 삼았지만 믿읍지 못한 미국의 극동전략은 한반도를 최후 방어선에서 제외한 것이 남침을 유발한 빌미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곧 한반도를 불행의 구렁텅이로 빠트린 ‘악의 논리’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즉각 유엔안보리를 통해 유엔군을 파견함으로서 낙동강방어선을 지키고 유명한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가는 승전고를 울렸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또 다시 전세는 악화되고 정전협정을 맺은 것이 한반도 분단의 장기화를 가져오고 만 것입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주범 일본이 저지른 악의 단초를 소련이 이용하고 미국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일어난 사건들이 한반도는 물론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의 희생이 막대한 사실 앞에 몽매한 중생의 업보를 되새기게 할 뿐입니다.
6월이 되면 일련의 사태 속에 희생된 무고한 영렬이 모두 고혼위령의 대상이라는 명제를 느끼게 합니다. 때문에 6월을 보훈의 달로 정하고 전 국민적으로 이들을 위로하고 있지만 6.25전쟁 유전5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아직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전상자가 있다는 것이 숙연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공교롭게도 6월 15일은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 기념일이기도 한데 금년에는 6.25로 단절된 철도를 복원하여 기차길로 만남의 장을 열기로 한 것이라는 기대가 괄목할 만한 것 같습니다. 이미 소련 공산권이 붕괴되고 동쪽의 땅에도 해빙의 물결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폐쇄된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는 북한으로 하여금 자비광명의 가피력이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속연이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니 모든 업보를 소멸하는데 진력정진을 할 것을 간곡히 당부하면서 6월 보훈(報勳)의 달 염원이 보다 넓고 깊은 보은(報恩)의 공덕으로 승화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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