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태 변호사 |
‘다빈치코드’의 내용이 기독교 신앙의 중심인 예수님을 모욕한, 이른바 신성모독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법원은 “이 영화는 누가 보아도 허구인 창작의 산물인 만큼 예술과 표현의 자유는 사전에 제한하여서는 안 된다”는 의미에서 상영금지가처분사건을 기각하였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종교를 가진 사람의 신앙심이 허구적인 창작물에 의하여 모욕을 받았을 때에 사회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한계, 즉 신성모독이 법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보호받을 수 있는가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오늘날 매스컴의 발달은 이러한 신성모독의 문제를 전지구화의 문제로 확대시켰다. 지난해 10월 덴마크의 유력 일간지에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를 테러리스트처럼 묘사한 카툰이 문제되어 전 세계의 이슬람국가에서의 거센 반발이 있었고 이번엔 그 강도가 약하지만 신성모독이라는 이유로 ‘다빈치코드’ 역시 세계적으로 문제화가 되었던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신성모독에 관련된 사건은 인류에게 대단히 중요한 문제의 하나가 되어 왔고 사실 어떤 사건의 경우 역사의 전환점이 되기도 하였다. 그 예가 바로 당시의 그리스 신들을 모욕하였다는 이유로 독배를 든 소크라테스이며 예수 역시 신성 모독이라는 이유로 십자가형을 받았다.
이 두 가지의 신성모독사건은 서양문화의 거대한 두 줄기, 그리스문화와 기독교문화의 원류가 되었다는 사실은 신성모독의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종교의 자유로 인하여 이러한 신성모독의 문제는 중요성이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날 여전히 개인의 종교적 신념에 대한 모욕의 문제로는 남아 있는 것이다. ‘다빈치코드’사건도 개인의 신앙, 종교적 신념에 대한 모욕의 문제가 된 것이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하여 몇 가지 관점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무신앙적인 관점에서 예수님 역시 평범한 인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니 그러한 추론이 사실일 수 있다는 관점이고, 둘째로 창작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추상적인 이념에 충실하기 위한 관점에서 사실여부를 불문하고 표현의 자유에 제한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관점, 셋째로 신앙의 대상이 된 예수님에 대한 허구의 사실을 묘사함으로써 신앙인에게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었으니 법상 명예훼손 등에 해당된다고 보는 관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법원은 ‘다빈치코드’에 관해 두 번째의 관점을 취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법원의 이러한 판결은 한 가지 중요한 점을 간과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즉 이 사건에 대하여 표현의 자유를 강조한 나머지 개인의 종교적 감정의 관점을 지나치게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조부께서 독립운동가로서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으로 알려졌는데 어떤 소설에서 일제와 내통하여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으로 묘사되었다고 할 때에 허구이기 때문에, 또한 창작의 자유라는 이유 때문에 표현의 자유로서 허용되어야 할까 하는 문제와 같다. 표현의 자유의 보장이라는 이유만으로 쉽게 결론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빈치코드’의 내용이 거의 대부분 허구라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분명히 밝혀지긴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빈치코드’가 만약 단순한 상업적인 이익만을 위해 이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악용하여 개인의 종교적 감정을 해친 경우라고 한다면 ‘창작의 자유’라도 무제한 허용될 수는 없을 것이다. 법원은 이러한 상업적인 악용의 문제에 대하여도 좀 더 깊이 있는 검토 후 판단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솔직히 이러한 심각한 논쟁의 그늘에서 영화상영으로 인하여 이익을 보고 있는 그 사람들의 음흉한 웃음이 떠오른 것은 필자만의 독단적인 생각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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