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 속의 빌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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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 속의 빌라도

시사에세이

  • 승인 2006-05-23 00:00
  • 이용웅  목요언론인회원이용웅 목요언론인회원
역사적으로 군중 심리를 가장 극명하게 나타낸 사건은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入成)과 빌라도의 재판 과정이 아닌가 싶다.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기쁜 소식을 선포하며 예수는 문둥병자를 깨끗이 해주고 죽은 나자로를 살리는 등 숱한 기적으로 로마의 압제에 신음하던 온 유다 백성의 희망이 된다.

예수는 그러나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조차 믿기 어렵게 “내 나라는 이 세상 것이 아니다”며 세 차례에 걸쳐 자신이 어떻게 죽고 다시 살아날 것인가를 예언한다.

죽음을 향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예수에게 군중들은 겉옷을 벗어 길에 펴놓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깔아 놓으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 받으소서 지극히 높은 하늘에서도 호산나!” 하며 환호한다.

예수는 마침내 제자 유다스의 배반으로 그를 시기해 죽이기로 작정한 대사제(大司祭) 등 유다 지도자들 앞에 서게 되고 급기야 로마 총독인 빌라도에게 넘겨지게 된다.

심문을 통해 아무런 죄목을 찾지 못한 빌라도는 예수를 살려줄 요량으로 모진 채찍질을 하여 피투성이가 된 그와 반란을 일으켜 살인죄로 감옥에 갇혀 있는 폭도 바라빠 중 누구를 풀어줄까 하고 군중의 동정심에 호소한다.
그러나 “만일 그를 놓아 준다면 총독님은 카이사르의 충신이 아니다”는 유다 지도자들의 엄포와 “바라빠를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이 지겠다”며 악을 쓰는 군중들의 외침에 빌라도는 “너희가 맡아서 처리하여라,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며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내어준다.

애당초 대사제 등은 ‘자칭 하느님의 아들’ 이라는 예수의 선언이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이어서 그를 죽이기로 작정하지만 그토록 환호하던 군중들이 하루 아침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돌변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바이블은 기득권 세력인 대사제와 원로 등 지도층의 선동 때문임을 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유다의 왕이 되어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예수에 대한 희망을 잃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빌라도 역시 자신의 권력보다 더 큰 로마 황제 카이사르를 들먹이는 대사제와 원로의 속셈에 무릎을 꿇고 마는 비굴함을 드러낸다.

2000년 전 이 재판에 등장하는 군상들과 오늘을 사는 우리들, 너무나도 닮은 모습이 아닌가 싶다. 권력을 탐하고, 빌붙고, 이들의 선동에 자신의 양심을 팔고, 책임까지 지며 내 탓이 아닌 네 탓으로 돌리는 비굴함과 이기심 등등….

그럼에도 우리는 희망을 갖는다. 지난 4월 그리스도인에게 부활절이 있었듯 계절의 여왕인 5월엔 부처가 오신 자비의 달이기도 하다. 믿는 이든, 믿지 않는 이든 사랑과 자비는 꼭이극락과 하늘나라 등 내세 못지않게 이 세상에 평화와 정의, 행복 그리고 희망을 가져다주는 참 길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달엔 전국적으로 지방자치단체장 및 의회의원 선거가 실시된다.

지방살림을 잘 꾸려나갈 후보가 누구인지 지금부터라도 고민하고 꼼꼼히 챙겨봐야 할 것이다. 후보 면면을 보면 다 ‘나 잘난 사람’ 이요 적임자 아닌 사람이 없을 정도다.

선택은 각 개인의 결단이다. 여론 몰이식 후보 띄우기와 지지도 공표 등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는 국민 스스로 꿰뚫어 봐야 한다. 잘못 선택의 책임은 여론이 아니라 바로 선택자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2000년 전 예수 재판에서 선동자 유다 지도자와, 재판관 로마총독 빌라도는 오간 데 없이 백성들만 예수의 피흘림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한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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