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당나라 때 일본을 소개하는 문헌에 일본-니폰을 중국식 한문으로 가차하여 “짓폰”이라 발음했던 기록이 있다 해서 그 짓폰이 훗날 자기네 나라를 재팬이라고 부르게 되는 근거로 삼기도 한다. 그러나 짓폰과 재팬의 발음상 유사성이 약간 있다 하나 오히려 다음 얘기를 근거로 하고 있다.
서기 1271년 17세 때 아버지를 따라 원나라에 왔다간 이탈리아인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동방에 지팡구(Jippangu)라는 나라가 있는데 그곳에는 금이 무척 많이 나며 왕궁도 황금으로 지어져 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 후부터 그 지팡구가 일본이며, 서양에서 일본을 재판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한다.
그런데 단지 중국 원나라에 머물던 그가 말한 대로 금으로 궁전을 짓고 사는 지팡구가 중국 동남쪽 바다 건너 멀리 있는 바로 그 일본이라는 나라를 말하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더욱이 일본이 황금의 나라인가. 이것 역시 과장되었거나 잘못된 주장이다. 오히려 다음 얘기가 설득력이 있다 할 수 있다.
일본의 관서지방 관문으로 오사카(大阪)라는 도시가 있다. 재일 한인들이 제일 많이 모여 사는 도시로써 일본 내 어느 도시보다 우리 한 민족과 남다른 인연과 애환이 서려있는 도시이다. 본래 일본 관서지방은 조선 반도로부터 인적교류와 문화적 유입의 관문이었다. 백제인의 도래로부터 조선조 시대 수없이 건너간 조선 통신사가 열도에 들어가서 나라, 고베, 교토를 가는 과정에 지나가는 길목이요, 그 첫 기착지가 오사카이다.
일인들은 그 길목에서 조선의 귀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큰판을 벌이면서 환영하였다. 그래서 조선인들은 그 곳을 큰 판이 벌어지는 고을이라 하여 그곳을 대판(大阪)이라 불렀다.
한편 일본에는 1550년경부터 나가사키항 앞에 있는 데지마 섬을 중심으로 포르투갈인들이 들어와 살았고 이어 네덜란드인들도 무역을 하며 그곳에 상주해 왔다. 이를 계기로 이들 서양인들에 의해 일본은 본격적으로 서양에 알려지게 된다.
그런데 그 외국인들 특히 네덜란드인들에게는 대륙의 문명국인 조선국을 대표한 수신사들이 일본에 들어오면서 그 관문을 ‘대판’이라 호칭하는 것이 마치 일본국을 호칭하는 줄로 알았다. 그리고 그 대판의 호칭 첫자 ‘대’가 일본식으로 구개음화되어 ‘재’로 들려 ‘재판’으로 들렸던 듯 하다.
그로부터 일본은 서구 유럽에 재판(Japan)이란 이름으로 알려졌고, 그 후 일본은 서양인들에 의해 재판이라 불려지게 되었다. 결국 일본의 서구식 이름 재판은 우리가 붙여준 이름이다.
우리가 이름 붙여준 재판의 재판니스들은 도대체 어떤 민족이기에 우리에게 고마워 하기는커녕 고대로부터 우리 한민족에게 그렇게 숙명적 갈등을 조장하며 살아오고 있는가?
“나를 거스리는 자는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다”는 속담이 있다. 지정학적으로 일본은 우리나라에 가장 가까이 있는 나라다. 먼 나라 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된다.
또 섬나라인의 소인배적 열등의식과 대륙지향의 끊임없는 향수가 우리를 괴롭히는 그들의 태생적 본성으로 자리잡고 있다. 교육심리학에서는 그런 본성을 잘 살리면 자기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성숙되지 못한 성품을 지닌 자나 민족은 배타적이거나 국수주의자가 되어 상대를 괴롭히는 이지메적 가해자가 되기 십상이다. 이런 그들에 대해 우리는 측은지심과 더불어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좀 더 어른스러워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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