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제 시행 이후 단체장이 선거직으로 전환되면서부터 정당 공천이라는 명분 아래 행정 같은 정치, 정치 같은 행정을 하겠다며 지역마다 난립하는 형국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행정과 정치를 조화롭게 겸비한 사람은 드물다. 정치는 고도의 경륜을 필요로 하지만 행정은 양심과 능력을 토대로 한 전문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때때로 권모술수(權謀術數)나 이상(理想)만을 가지고 아니면 말고 식의 임기응변이 통하기도 하지만 법규로 정해진 민생의 현실을 집행해야 하는 행정은 민초(民草)의 생사를 좌우하는 전문 기술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민생이 편안해지려면 정치와 행정이 공존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때문에 민생의 질이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선 정치와 행정의 조화가 최우선이다.
그러나 이 시대의 정치와 행정이 조화롭지 못함에 어느 누굴 탓하겠는가.
지방자치란 가장 이상적인 민주적 제도라고 한다. 그러나 주민들의 의식 수준과 참여도가 뒤따르지 못할 때는 엄청난 부작용이 뒤따르는 것이 지방자치이기도 하다.
주민들의 자치 의식 수준과 참여도의 정도 여부에 따라 해당 지방 자치 단체의 성패가 달라지고 그 선택을 잘못 했을 경우에 나타나는 손실은 모두가 지역민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는다.
예전보다야 깨끗해 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부정과 부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공직자들의 비리로 얼룩져 있다.
각종 이권 개입과 뇌물 수수는 물론이고 성추행 사건에 이르기까지 여`·야 할 것 없이 지도자들이 검찰에 구속되고 수사가 계속 진행되는 등 지도자로서의 도덕성은 이미 땅에 떨어진지 오래다.
백성들은 날이 갈수록 푸념과 원망이 그치지 않고 빈부의 격차는 늘어날 대로 늘어나 극과 극이 대립하는 불행한 사태들로만 예견되고 있으며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갈수록 멀어져 헤쳐 나갈 힘조차 없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이황(李滉)선생(先生)의 퇴계집(退溪集)에 사기종인(捨己從人)이라는 말이 있다.
자기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따르지 못하는 것은 배우는 사람의 큰 병이니(不能舍己從人 學者之大病) 천하의 의리는 끝이 없는데 어떻게 자기 자신만 옳고 남을 옳지 않다고 할 수 있는가(天下之義理無窮 豈可是己而非人)라면서 타인의 말과 행동을 본받아 자신의 언행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어진 지도자에게는 끊임없이 인물이 모이고 백성들 사이에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고 했다. 사기종인(捨己從人)의 지도자야말로 삶에 찌들고 지쳐버린 백성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것이다.
들리지 않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먼저 보며 더 어려운 이들에게 애정을 부어 주는 지도자, 백성의 푸념과 원망을 귀담아 들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고 나라의 주인공인 백성들을 위해 정치와 행정을 펼 줄 아는 지도자는 없는 것일까.
다가오는 5월 31일에는 권력을 가지고 지역 주민에게 군림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주민과 기관 구성원들에게 사기종인(捨己從人)의 정신으로 봉사하는 청렴하고 깨끗한 분들이 지도자로 많이 선출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각 지역의 유권자들도 양심을 가지고 정치와 행정을 겸비한 능력 갖춘 적임자가 누구인지 해당 지역의 명운을 걸고 철저하게 심판해 보자.
우리에게는 서민의 말에 늘 귀를 기울여 실천에 옮길줄 아는 사기종인(捨己從人)의 지도자가 필요하지 않은가. 선택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유권자들의 깨어난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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