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베일을 벗은 ‘다빈치 코드’는 한마디로 ‘허망’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너무 많이 담으려다 너무 많은 걸 놓쳐버린 영화였다.
예고됐던 대로 스피드는 눈과 머리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 방대한 원작소설을 2시간30분 영상에 꾹꾹 눌러 담다 보니 빨라지는 건 필수. 그러나 눈길을 잡을 만한 방점이 없는 탓에 그냥 밋밋하게 흘러가 버릴 뿐이다. 영화적 상상력은 원작소설의 것 이상을 넘지 못했고 스릴러의 생명인 긴장감도 죽었다. 긴 대사는 영화의 호흡을 끊고 배우들의 연기마저 압도해 버렸다.
영화의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을 때 론 하워드 감독은 “원작에 충실하긴 하지만 원작을 읽지 않은 관객들도 충분히 쉽고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엔터테인먼트가 될 것. 훨씬 스피디하고 거대한 스케일의 비주얼로 업그레이드 했다”고 말했다. 원작에 충실했다는 약속만큼은 충실하게 지켰다.
원작처럼 루브르 박물관에서 심야에 일어난 기괴한 살인사건으로 시작된다. 미국인 기호학자 로버트 랭던(톰 행크스)가 불려오고 살해당한 박물관 큐레이터의 손녀 소피 느뵈(오드리 토투)가 다빈치의 암호와 성배의 비밀을 파헤쳐 가는 순서도 원작 그대로다.
랭던과 티빙 경의 설명을 특수촬영으로 담아낸 장면의 스케일은 대단했다. 십자군 전쟁과 템플 기사단 등 거친 질감으로 오래된 그림을 연상시키는 이 멋진 장면들은 그러나 아쉽게도 조각조각 스치듯 지나가 버렸다. 시각적 즐거움을 느낄 새도 없이.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다빈치 코드’는 보여준다. 원작에 충실하다고 해서 다가 아니라는 거다. 생략할 건 과감히 빼고 살려낼 건 영화적 상상력으로 증폭시키되 원작의 흐름을 방해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반지의 제왕’ 3부작을 높이 치는 건 생략과 증폭 과정을 거의 완벽히 해냈기 때문이다.
외신들은 영화 속 랭던이 “역사는 예수가 비범한 사람임을 보여주고 있고, 왜 예수가 신성스러우면서도 아버지가 될 수 없느냐”고 원작과 다른 말을 하고 있다고 실망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진짜 실망은 재미가 없다 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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