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한 상상력 무장… 관객 유혹
가족에 대한 성찰 상큼하게 풀어내
가족이란 무엇인가. 꼭 핏줄로 이어져야 가족인가. ‘가족의 탄생’의 대답은 삼박하다. 아니라는 것.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곧 가족이라는 거다. 구구절절 설명하거나 설득하려 들지도 않는다.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사랑의 본질을 극적으로 포착해내는 과정은 상쾌하다. 관습에 젖은 편견과 오해를 걷어낼 때의 상쾌한 기분은, 물론 영화를 끝까지 본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품이다.
모두 3부로 구성된 이 영화에는 세 가지 이야기가 담겼다. 미라(문소리)는 몇 년 만에 돌아온 남동생(엄태웅) 곁에 스무 살 연상의 아내 무신(고두심)이 함께 있는 걸 보고 당황한다. 그래도 가족이라며 웬만큼 정을 붙이고 살 만해질 무렵 무신의 전 남편의 전 부인의 딸이 찾아온다. 첫 번째 에피소드가 가족의 확장을 그린다면, 두 번째 에피소드는 상실을 담는다.
선경(공효진)은 모든 게 짜증스럽다. ‘사랑밖에 난 몰라’하며 남자를 갈아치우는 엄마 매자(김혜옥) 때문이다. 엄마가 불치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된 선경은 그녀의 굴곡진 삶이 더욱 원망스럽다. 급기야 자신의 연애전선도 회복할 수 없는 국면에 빠진 선경은 엄마와의 관계를 끊으려 하고. 마지막 에피소드는 앞선 두 에피소드의 후일담이자, 귀결이며 환원이다.
경석(봉태규)은 애인 채현(정유미)이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잘해주느라 정작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자 속을 끓인다. 채현의 집에 간 경석은 기묘한 가족을 만나게 된다. 이제 영화는 앞선 두 에피소드를 끌어안는데, 꽤나 절묘하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에서 여고시절의 독특한 공기를 섬세하게 포착했던 김태용 감독은 7년만의 신작에서 다시금 섬세한 연출력을 발휘했다.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인물들을 결국 가족으로 묶어내는 화술이나, 줄줄이 설명하지 않고도 일곱 명에 이르는 주요 인물들을 생생히 살려내는 캐릭터 조형술은 탁월하다. 일상의 소소한 사건을 찔끔 흘려놓지만, 그 것으로 전체를 담아내고 스케치처럼 지나가는 감성에서 본질을 드러내는 디테일은 더없이 훌륭하다.
흥미로운 건 세심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심드렁한 템포다. 서로는 서로에게 변명하거나 살가운 말을 건네지 않지만 사랑이 배나오고, 누나는 동생을 마구 대하면서도 그를 향한 애정을 감추지 못한다. 카메라의 시선과 배우의 움직임, 목소리의 높낮이에서 오는 느낌만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솜씨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문소리 고두심 엄태웅 김혜옥 공효진 봉태규 정유미 등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들의 연기 호흡도 빼어나다. 특히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모노드라마 못지 않은 연기를 쏟아 붓는 공효진과 마지막 에피소드의 ‘헤픈 여자’ 정유미의 연기가 눈길을 잡는다. 정유미는 서로 할퀴고 상처를 내지만 함께 둘러앉아 밥 한 끼 먹을 수 있다면 그것이 가족의 행복임을 증명하는 마지막 퍼즐조각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다.
풍부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가족의 탄생’은 이미 본 관객을 두세 번 극장으로 불러들일 그런 영화다. 영화 보는 내내 행복하고, 보고 나면 세상 살 맛 나는 이런 영화를 언제쯤 다시 만날까. 극장을 나설 때 안치환의 노래 ‘꽃보다 사람이 아름다워’가 흥얼거려 졌다.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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