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년 돌아오는 어버이날이지만 한 해가 새롭다. 올 해도 친정아버지 팔짱을 끼고 식사라도 한 끼 할 수 있어 행복하고 다행스럽다. 올 해로 여든 네 번째의 생일상을 받으신 아버지께서 내년 생신을 다시 맞으실 수 있을까 걱정이 되는 것은 연로하신 부모님을 둔 자식이면 누구나가 갖는 생각이리라.
대학교 1학년 때 회갑잔치를 했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친지들과 동네 어른들, 주변 지인들을 모시고 집에서 잔치를 열면서 남들은 축하인사를 하고 집안은 풍악소리에 흥겨움이 더해 가는데, 6남매 막내였던 나는 그 날 기쁘기보단 부모님이 늙어 가신다는 것에 슬픔이 더욱 컸었다. 딴에는 축시를 지어 낭독을 하면서 분위기를 돋운다는 것이 전혀 분위기 파악을 못한 별난 시낭송 순서가 되었다.
낭송하던 글귀에는 부모님의 은혜에 대한 고마움도 표현 되었지만,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어 늘어가는 흰머리를 바라보는 안타까움이 절절히 묻어나 잔치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훔치고 말았다.
잔병치레가 많으셨던 어머니는 10년 쯤 지나 명을 달리 하셨고,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든든한 병풍처럼 힘든 세파를 헤쳐 나가는 나의 바람막이가 되어 주시고 계시다. 살아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고 위안이 되는 것이 부모가 아닐까?
길을 가다보면 유난히 노인 분들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버스 정류장에서 만났던 한 할머니는 계속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생각 없이 의자에 앉아계셨고, 물끄러미 그 광경을 바라보던 나는 버스가 떠나는 줄도 모르고 한참을 서 있었다. 젊음의 화려한 시기를 보냈을 할머니의 반복되는 행동을 보며 세월의 덧없음과 오래 사는 것만이 아니라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생각을 오래도록 했다.
평균 수명이 길어져서 모두들 인생을 더 길게 누릴 수 있다고 내심 다행스러워 하지만, 문제는 건강을 지키면서 오래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다. 건강하게 자신의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살 수 있어야 수명의 연장이 의미가 있고, 사회의 건강성도 유지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뉴스에서 끔찍한 소식을 접했다. 사건사고를 듣다보면 매번 황당하고 잔인한 일들에 몸서리 쳐지는 일이 많다. 끔직한 사건들이 비일비재 하다 보니 제법 면역이 될 만도 한데, 가정의 달 5월에 접하는 소식이어서 그런지 왠지 서글픔이 더해진다. 도박에 빠져 1억원 이상의 빚을 진 20대 아들이 아버지와 말다툼을 하다가 둔기로 아버지를 때려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소식이었다. 친족을 살해하는 패륜범죄는 더 이상 새삼스런 일도 아니다.
가끔은 의견 충돌로 부모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자식도 있고, 재산 상속문제로 부모 자식간의 의를 끊는 얘기들도 종종 접한다. 물론 없는 살림에도 지극정성으로 부모를 섬기고 아직도 아침·저녁으로 문안 인사를 여쭙는 효성스런 자식들의 이야기도 듣곤 한다.
어떤 삶을 살다가, 늙어서 어떤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인가는 지금 나의 행동이 밑바탕이 된다. 황금만능주의가 낳는 많은 왜곡된 일상의 삶을 사람냄새 나는 세상으로 복원시켜내는 노력은 개인의 생활에서 시작된다. 부모님께는 돈으로 효도하려 하지 말고, 자주 얼굴 보이고, 일상의 작은 변화라도 알려 드리며 그렇게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리라는 다짐을 하면서 수화기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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