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시대의 수박과 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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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시대의 수박과 호박

<최충식의 안과밖>

  • 승인 2006-05-17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며칠
후 있을 TV토론을 준비하면서 고민에 빠졌다. 후보자간 상호토론을 넣어 한바탕 설전이 오가야 생동감 넘치는 '비디오'가 되겠지만 준비하는 측에서는 늘 돌발변수가 불안하다. 녹화 아닌 생방송의 경우라면 말할 여지가 없다. 네거티브 선거풍토는 미디어선거 시대에도 맹위를 떨친다. 방송토론이 선거운동의 50%를 좌우한다고까지 믿는 후보자들 앞에선 신경이 곤두서게 마련인 것이다.

잠시 '왝 더 독(Wag The Dog)'이란 영화를 떠올려본다. 백악관 견학을 온 걸스카우트 여학생과 대통령의 스캔들이 드러나자 정치적 진실을 감추고 비난 여론을 무마하려 전쟁을 기획한다. 이 가운데서 대통령이 전쟁 장면을 촬영하는 스태프에게 어린 소녀가 안은 점박이 고양이를 흰 걸로 바꾸라고 지시하는 대목이 인상적으로 클로즈업된다.

또 잠시 소설 속에 언뜻언뜻 비치는 지방의원들의 역할을 보니 대강 이렇다. 어느 날, 지역사회의 자원을 공유하던 사람들이 특권층 행세하고 이상한 규정과 제도를 만들어 그들만의 회의를 거듭하고 급기야 일을 내고 마는 사람들로 비쳐지는 정도랄까. 마을 당산나무 하나 벨까말까를 놓고 옥신각신하는 경우는 일을 좀 하는 사례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미디어 속은 어떤가. TV 모니터에선 그냥 호박보다 줄 그은 호박이 독특해 보일 수 있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될 리 만무하니 그럭저럭 지나치더라도 진짜 수박보다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면 어쩔 것인가. 브랜드, 이미지만 좇는 선거가 꼭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지난 총선에 이어 이번 지방선거의 방송토론을 준비하면서 필자가 우려했던 부분은 사실 이것이었다.

다시 한 번 미디어 선거의 그늘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한 추론으로는 상대를 판단할 때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이 55%이고 목소리가 38%라 한다. 이야기의 내용은 고작 7%라면, 그래서 재현된 현실, 재구성된 이미지에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정책이며 매니페스토는 뭐가 남는가. 그럴수록 우리는―서구 나라들의 토론 전용 유선방송에서 민주주의 발달의 한 과정을 엿볼 수 있었듯이―토론의 과정을 믿어야 한다.

시끄럽다고? 정치가 진리 실현의 장이 아닌, 의견이 겨뤄지는 경쟁의 장인 마당에 왜각대각 소리내는 것은 당연하다. 정치싸움 그만두고 민생 챙기라는 말을 단골로 쓰지만 한편으로 이는 어폐가 있는 말이다. TV토론도 그렇다. 보는 사람 입장에선 다소 화약냄새가 폴폴 날리는 토론이어야 긴장감이 감돈다. 후보자가 허공에 주먹을 휘둘러대는 모습까지 생생하게 보게 된다면 이거야 최상의 부가 서비스다.

미디어선거의 가장 큰 그늘은 역시 이미지 조작이 쉽다는 것이다. 부자 되세요라고 외치는 카드 광고의 주술에 홀려 신용불량에 걸리기도 하는 것처럼 우리는 매체에 기만당하기 좋은 시대를 살아간다. 자르르 윤기 흐르는 생선을 찢어발기는 광고에 못 이겨 상품을 주문한 경험이라도 있는가. 필요성보다 욕망을 부추기는 광고가 좋은 광고니까.

하지만 아름답고 좋은 것만 가득 찬 이미지의 나라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화려한 눈속임 쇼에 속지 말자. 시각적인 것을 너머 지각적, 정신적, 언어적인 모든 이미지까지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잘 포장된 후보의 모습 뒤에 가려진 진면목을 봐야 하고 그런 안목을 틔워주는 것이 또한 토론이어야 한다. 싸워라! 당당하게 싸워라!

다만 한 가지, 토론에 나설 후보자들은 이미지와 실체의 조합을 통해서 PR이 가능해진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토기장이에 따라 같은 흙에서 다른 토기가 만들어진다. 지방자치에 대한 주민의 가장 적극적인 참여는 단체장이나 의원에 입후보하여 당선되는 것, 그 다음 적극적인 참여는 투표에 참여하는 것이다. 후보자를 잘못 고르는 것은 유권자 책임이고…. 이미지를 생산, 유통, 소비하는 호모 미디어쿠스들이여! 수박과 줄 그은 호박은 가려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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