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던, 체코에서 태어나 근대 초·중등 교육을 선도한 교육사회학자 코메니우스의 ‘大敎學’이란 저서에 실렸던 이야기이다.
1540년경 오스트리아의 핫샤라는 숲속의 어느 마을에 생후 3세의 어린이가 행방불명된 일이 있었다. 몇 년 후 마을 사람들은 늑대 떼 속에 섞인 이상한 동물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동물은 늑대와 같이 네 발로 뛰어다니기는 하지만 몸이나 얼굴이 사람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농민들이 사로잡아 우리 안에 가두었다. 그 안에서 늑대처럼 으르렁거리고 우리를 부수기도 하고 날것을 그냥 먹고 야수처럼 사나웠다.
그 동물에게 오랫동안 교육을 시키니 성질도 온순해지고 두발로 설 줄 알게 되었다. 마침내는 언어에 의한 의사소통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 동물이 늑대에게 잡혀간 뒤 늑대 속에서 키워진 행방불명된 어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교육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말해준다. 사람들이 교육을 받지 못하면 야수와 다를 바가 없음을 보여준다. 사람이 늑대에게 사육되면 ‘늑대다운 사람’이 되고, 순수한 사람에게 교육되면 ‘사람다운 사람’이 된다.
내가 알고 있는 교사 중의 한 분은 정말 학생지도에 심혈을 기울이시는 분이다. 20년이 넘는 교사생활 중에 고교 3학년 담임 및 부장교사를 15년이 넘게 해 오신 분이다.
매일 아침 7시 30분이면 출근하여 교실을 둘러보고, 밤 11시 이후에 퇴근하는 일이 일주일에 일요일을 포함하여 대여섯 번은 된다. 그래도 불평불만 한 마디 하는 법이 없다. 쉬는 시간 틈만 나면 교실을 둘러본다. 그의 지론은 간단하다. “벼이삭은 농부의 발소리를 들으며 자라는 것이며, 학생은 담임교사의 발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야간 자기주도적 학습을 하면 아예 교실에서 함께 책을 보며 질문에 응하든가 각 교실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뱅뱅 돈다.
대개 훌륭한 교사의 제1덕목으로 꼽히는 사례가 생활지도상으로 크게 성공하여 일탈된 학생을 감화하여 올바른 학교생활이나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선도하는 것이다.
그 교사에게는 사회에서 각광받을 큰 미담사례는 없다. 언론매체의 큰 집중을 받은 일은 없지만 교육이란 큰 집의 튼튼한 벽돌이 될 수 있음은 분명한 셈이다.
정년퇴임하고 사랑했던 제자들이 백발의 스승을 찾아 왔을 때, 제자들 중에는 고위관리가 되고, 장군이 되고, 사장이 되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회에 진출하여 비록 실패했지만 존경심으로 스승을 찾아올 수 있고, 찾아온 가난한 제자를 따뜻이 맞이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아름다운 교직 문화다. 바로 이러한 교직 문화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옆에 계신 무명교사 그분이 아닐까 한다.
새로 맞이하는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사회에서 교육계를 바라보고 혹시라도 질타라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땅에 또한 수많은 무명교사가 있음을 감히 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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