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김백겸 시인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국악방송 편성제작을 맡고 있는 최유이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 프로그램에 선생님 시를 삽입하고 싶어서요. 한 열 편 정도 대표시를 골라 낭송해주시면 하루에 한 편씩 방송됩니다.”
(국악방송이라… 첨 들어보는데… TV는 아니고 라디오 같군.)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국악방송이 어디에 있어요?”
“강남 예술의 전당 아시지요. 그 옆에 있습니다.”
“그럼 서울이군요. 서울에 좋은 시인들이 많은데 지방의 저까지 불러 올리다니 좀 뜻밖이네요.”
“서울의 주요 시인들은 다 다녀 가셨고요. 전국의 주요 시인들을 골고루 모실 계획입니다.”
(그럼 그렇지. 시 좀 쓴다는 시인 중 서울에서 자원이 바닥났다는 얘기구나.)
“알겠습니다. 가 보도록 하지요”
(차비야 주겠지….)
젊은 시절의 나는 책과 음악에 미쳐 살았으나 젊은 혈기에는 느린 템포가 마음에 안 들어서 국악은 별로 좋아하는 장르가 아니었다. 십대에는 팝을, 이십대는 록을 들었으나 삼십대는 클래식에 취미를 붙였다. 그러나 사십대가 되자 국악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뇌 회전이 느려지면서 내 감수성의 템포가 느려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명창들의 판소리가 한국판 호머의 ‘일리아드’이며 ‘오딧세이’라고 생각하니 이게 바로 음유시였다.
이렇게 해서 팔자에 없는 마이크를 잡았으며 독자들에게 시의 이해를 위해 멘트를 한마디 하게 되었다
“국악방송 청취자 여러분과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대전에서 시를 쓰고 있는 김백겸입니다. 198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기상예보’가 당선돼 문단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올해에 출간한 시집 ‘비밀방’을 비롯해 4권의 시집을 냈습니다. 인생에 굴곡이 있듯이 제 시작생활에도 90년대는 거의 절필하다시피 하다가 2002년도부터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요즈음에는 비교적 많은 작품을 전문문학잡지에 발표하고 있습니다.
시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저는 ‘정신의 즐거움’을 언어로 추구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상징이나 비유가 들어있는 이미지를 운율에 얹어서 보여주는 일입니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회로애락 같은 감정으로부터 정서을 끌어내서 사유의 틀로 마무리하는 놀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놀이로서의 제 시를 낭송하는 즐거움은 화자와 청취자가 다같이 공명하는 자리에서 발생합니다.
화자와 청취자가 악기가 되어야겠지요. 이렇게 해서 ‘모든 예술은 음악의 상태를 지향한다’는 명제가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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