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도 제 키의 열 길이 넘도록 심어지면 움이 나오기 힘이 든다’는 옛 늙은이의 가르침을 잊지 않으며, 농부는 너를 정성껏 땅 속에 묻고”, “온 겨울의 어둠과 추위를 다 이겨내고, 봄의 아지랑이와 따뜻한 햇볕과 무르익은 향기를 온 몸에 지니면서 고요히 머리를 숙이는 성자(聖者)인양 기도를 드리는” 보리의 일생과 봄의 정경, 농부의 마음을 노래하였지만, 도시 한복판에서 자라는 보리를 보니 아련한 동심에 젖어 든다.
요즈음은 시골에서도 보리밭을 찾아보기가 어렵게 되었지만, 다수확 신품종 벼가 나오고 과학영농으로 쌀이 자급되기 이전인 70년대까지만 하여도 보리는 사람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중요한 양식이었다.
밭은 물론이고 논에도 보리를 심어 사방이 보리밭이었고, 이른봄이면 서릿발에 떠올려진 뿌리가 마를까 포기 사이로 흙을 넣으며 꾹꾹 밟아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농사일이었다.
베어다 말린 보릿단을 타작할라치면 땀으로 범벅된 몸에 꺼럭은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모르고, 힘든 보리방아에 고달픈 시집살이 하소연 할 데도 없었던 며느리의 설움은 얼마나 컸을까?
새싹이 푸른빛을 더하는 좋은 계절과는 달리 지난해 거둬들인 쌀은 바닥이 나고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아 거둬들이기 전이라, 그래서 굶주림에 지친 5월을 ‘보릿고개’라 하여, 그 고개를 넘기려 풀뿌리를 캐고, 나무껍질을 벗겨서 쑨 죽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보리, 너는 항상 순박하고 억세고 참을성 많은 농부들과 함께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던 보리가, 이제는 식량으로보다는 동심을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작물이 되고, 관상용으로 심어지거나 꽃꽂이 재료로 쓰이고 있으니 감회가 새롭다.
눈보라 치는 추운 겨울을 이겨낸 보리처럼, 한때의 어려움을 견뎌내고, 생명의 환희와 결실의 기쁨을 맛보는 고진감래(苦盡甘來)의 교훈이 향수와 함께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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