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넷째 임금인 탈해왕이 즉위하기 전 토함산을 내려오는 길이었다. 물심부름으로 이 우물물을 떠오던 종자가 먼저 한 모금 마셨다. 그랬더니 바가지가 입술에 찰싹 달라붙는 것이었다. 자초지종을 안 탈해는 종자를 꾸짖었고 종자가 뉘우치자 그때서야 입에서 바가지가 떨어졌다 한다.
예전 대보름날이면 동네 안 우물을 깨끗이 청소하는 풍습이 있었다. 거기에 둥실 비치는 달 그림자를 맨 먼저 보면 행운의 조짐으로 여겼다. 용의 알(龍卵)로 불린 이 달 그림자를 아이를 갖기 원하는 여인네들이 앞다투어 떠다 마셨음은 물론이다.
우리 춘향전에 보면 '너는 죽어 물이 되어 은하수, 폭포수, 만경창해수, 청계수, 옥계수, 일대 장강 던져두고 칠년대한 가물 때도 일상진진 젖어 있는 음양수란 물이 되고'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렇게 물은 때로 여성스런 생명원리를 지닌 에로티시즘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물, 그것은 단순히 산소와 수소가 결합한 맹물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세례를 하거나 사악함을 씻는 각종 종교의식에서는 필수적인 매개물이 물이다. 천도교의 청수(淸水), 민속에서의 정화수(井華水), 유교에서는 현수(玄水), 천주교의 성수(聖水), 또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 성불할 때 쓰던 산욕수는 물이로되 예삿물이 아닌 것이다. 제사에 쓰는 술이나 설날 아침의 떡국은 물의 대용물로도 볼 수 있다.
각설하고, 남에게 이모저모로 속거나 허탕을 치거나 하는 경우를 일러 '물먹었다'고 한다. 언론계의 낙종에 울고 특종에 웃는데, 이른바 낙종했을 때도 물먹었다고도 하고. 오늘(5월 8일) 정식 기자 사령장을 받고 온 중도일보의 사랑스런 후배 기자들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부디 물먹지 말 것! 아니 먹더라도 의연한 기자가 됐으면 한다. 기자가 물먹는 것은 운명과도 같고 병가상사(兵家常事)나 다름없다. 실패를 겁내는 사람은 성공도 특종도 없다.
직장에서 좌천당해도 '물먹는다'는 표현을 쓰는 것을 종종 보는데, 그대들은 결코 이런 물도 먹지 말 것, 먹더라도 좌절하지 말 것! 그런데 '좌천'은 원래 그런 뜻은 아니었다. 사기(史記)에 적힌 바 '왕이 홀로 멀리 떨어져 거처함'(王獨遠居之 此左遷也)이다. '좌'가 낮음인 것은(높이 쓰이기도 하지만) 오른쪽은 높고 왼쪽은 아래(右尊高 左猶下也)라는 한서의 서술에서도 근거를 삼는다.
어쩌다 뉴스를 보면 소나 돼지에게 물을 잔뜩 먹여 근수를 한껏 부풀리다가 쇠고랑을 차는 악덕상인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속담에 물 많이 먹는 사람이 오줌 많이 눈다 하듯이 죄를 지은 사람이 벌을 받게 마련이다. 사필귀정이니, 물먹이려다가 물먹는 꼴이다. 바로 '물먹인다', '물먹는다'는 여기에서 의미가 확장됐다고 보기도 한다.
물도 잘 먹어야 한다. 더러는 물먹고 기사회생하는 경우도 많다. 무속신화 '바리데기'를 봐도 막내딸이 죽은 부모를 살려내려고 서천서역국에서 가서 약수를 길어다가 입에 넣으니 '후∼' 하고 살아났다는 대목이 있다. 의학적으로 물을 먹지 않으면 열흘도 배겨나기 힘들다 하면서 누구나 물먹는 것을 두려워한다. 성경에 366번인가 나온다는 '놀라지 말라' 혹은 '두려워 말라'. 그 놀라지 말라는 말로 스스로 맘을 다잡아먹고도 물먹으면 깜짝 놀라 샛노래지는 게 인간 성정(性情)인가 보다. 물은 먹을 탓이요, 거짓말은 할 탓이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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