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다시피 IMF 구제금융 사태는 한국경제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당시 IMF는 우리에게 수백억 달러의 구제 금융을 제공한 대가로 재벌개혁, 금융시장 개방 및 금융개혁, 노동시장 유연화, 정부개혁 등 한국경제의 구조조정을 요구하였다. 전체적으로 보아 이러한 내용들은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거품을 제거하고, 경제체질을 개선하며, 경제의 개방화와 자유화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었다. 즉, 건전하고 틈실한 경제운용을 위해 학계 일각에서 줄기차게 주장되어 왔지만 내부적인 의견통합의 부재로 실시하지 못했던 경제의 구조개혁을 외부적인 강제력에 의해 해결하는 기회를 갖게 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이 구조개혁에는 학문적, 실증적인 근거가 없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일례로 금융개혁의 내용 속에는 금융기관의 건전성과 안정성을 확보하여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 비율을 8% 이상으로 유지해야 하며, 이 기준에 미달하는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자본확충계획서를 접수, 평가하여 승인이 안 되는 경우 영업을 정지시키고 타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인수, 합병토록 한다는 조치가 포함되어 있었다.
IMF 구제금융사태의 해결과 관련하여 당시 유행했던 비유적 표현 중 하나는, 큰 불이 났다면 어떻게든 빨리 이 불을 꺼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무엇으로 끌 것인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애초부터 외환은행을 인수할 자격을 갖지 못했던 투기성 펀드 성격의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게 된 근거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었다. 당시 외환은행 매각을 주도한 정책당국자들은 이 매각이 긴박한 상황 하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당시 외환은행의 자기자본비율에 대한 조작의혹이 드러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러한 과거의 결정이 심각한 국부유출을 발생시키고 있으며, 외국자본유입에 따른 선진금융기법의 도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한미 FTA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노무현 정부의 논리는 개방과 무한경쟁이라는 신자유주의의 세계적 경제흐름 속에서 개방을 통하여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고용 및 생산성 향상의 효과가 크며, 미래 한국 경제에 가장 중요한 금융, 서비스 시장을 먼저 열어서 빠른 속도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논리를 제시하고 있다. 금융, 법률, 컨설팅, 의료, 교육 시장을 개방하여 이들 산업의 최대 강국인 미국과의 경쟁을 통해 한국의 산업도 강해지도록 하자는 것이다.
한미 FTA를 찬성하는 측은 “우리 산업이 경쟁력을 갖추고 나서 개방하자는 주장은 마치 마차가 지나가고 손을 흔드는 격”, “지금은 변하지 않으면 변화 당하는 시대이다. 구한말 우리는 변화를 거부하다가 을사늑약으로 변화 당하였다”는 등 한미 FTA가 성공해야 하며 새로운 국익창출의 기회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우려되는 것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입과정에서 보여 진 것과 마찬가지로 행여 한미 FTA도 조급함이나 강박관념 속에서 장기적인 국민경제적 득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를 불식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한미 FTA에 따른 사회, 경제 측면에서의 거시적 이해득실은 물론 각 부문별 차원에서의 미시적 손익계산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특히 손실이 나타날 수 있는 부문에서는 어떻게 그 손실을 보완할 수 있는 지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며, 취약한 산업의 경쟁력은 어떻게 끌어올릴 수 있는지 구체적 대비책을 갖고 한미 FTA를 접근해야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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