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2004년 12월 미국은 15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장을 신설하고, 국가대테러센터를 창설하며, 보안검색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보개혁법안을 통과시켰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그 후속조치로 2만 명의 직원을 갖고 있는 중앙정보국(CIA)의 비밀요원과 정보분석가를 최대 50% 증원하고, CIA로 하여금 국방정보국(DIA), 국가안보국(NSA), 연방수사국(FBI) 등 타 정보기관들을 실질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비밀정보활동에 대한 새로운 공통기준을 제시할 권한을 부여했다.
이러한 법안과 조치가 미국민의 신체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제약함에도 불구하고 미국민의 상당수는 이를 수용하는 분위기다. 이는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미국 민주주의의 확고한 기초 위에 어느 특정 정권의 이익이 아닌 미국과 미국민이라는 국익의 관점에서 생성되고 활동해 왔다는 것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1961년 박정희 소장의 군사혁명 후 한국에도 중앙정보부(초대 부장 김종필 중령)라고 불리는 진정한 의미의 정보기관이 탄생하였다. 3공화국을 거쳐 유신, 그리고 전두환, 노태우 정부에 이르기까지 한국 민주주의의 움은 꽃도 피우지 못하고 시들었다. 이 기간 동안 중정은 민주주의를 탄압하여 정권을 유지하려는 소수 권력자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첨병의 역할을 해냄으로써 자신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보장받았다. 대통령이 곧 국가였고, 대통령을 지키는 일이 곧 국가를 지키는 일이었다. 그 세월 동안 20대 후반의 싱싱한 젊은이로 중정에 입사한 사람들이 어느새 중정의 최고위층을 형성하였고, 그들의 의식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2세대들이 중정의 주류를 형성하였다.
오늘 참여정부에서도 지난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와 다를 바 없이 정부 출범 3년이 지나도록 국정원개혁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개혁안과 열린우리당의 개혁안을 보고 있노라면 사태의 본질에 대한 진정한 접근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대공수사권의 폐지니 정치사찰의 폐지니 하는 문제는 개혁의 본질이 아니다.
정보는 그 자체로 특별한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중립적이다. 정보를 수집하여 분석하는 사람들이 어떤 일정한 주관과 목적을 띄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 정보를 접하여 활용하는 기관이나 사람들이 문제다. 정보가 중립성을 잃을 때 위험하다. 따라서 국정원 개혁의 핵심은 정보의 중립성 확보가 생명이다. 중립성 확보는 기관 종사자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믿음에 기초하여 정권이익이 아니라 국익에 복무한다는 철학적 신념 하에 행동할 때만이 가능하다. 국정원 개혁은 조직과 기능만 개편하여 달성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21세기적 세계화 현상에서 한 국가의 존립과 번영은 상당부분 그 나라의 정보역량에 의존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정보의 중립성에 대한 깨우침 없이 오직 통제적 관점에서만 국정원의 개혁을 말한다. 손과 발을 묶어놓고 정보역량을 발휘하라 함은 언어도단이다. 무슨 정보든 국익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신바람나게 수집하도록 해야 한다.
국정원 종사자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정보의 중립성에 대한 회의가 있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한 신념을 여지없이 깨버렸던 과거의 숱한 인사 파행에 있었다. 국가정보원법은 국정원 직원에 대한 인사를 법률로 정할 것을 규정하고 있고, 국가정보원직원법이 제정돼 있으나 여기에는 채용과 승진 그리고 징계에 관한 규정만 있을 뿐이다. 인사의 공정성과 합리성을 이야기하는 개혁법안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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