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구체적인 정책과 실천 방안 제시도 없이 속빈 구호만 내지르는 무책임한 후보들, 구태의연한 조직 선거, 돈 다발이 진정한 국민 축제가 되어야 할 이 선거를 더럽히고 있는 몇몇 정당들의 추한 행태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선거판의 열기가 바로 그런 것들에 의해 혼탁해지고 또 그것을 무분별하게 보도하는 선정적 언론에 의해 더욱 증폭되는 현실이라면 국민은 선택에 앞서 이 축제의 의미에 대해 좀 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심각한 문제는, 정치권과 언론이 연일 네거티브한 정치 과정을 생산하고 전하느라 바쁜 가운데 정작 그 주인공이 되어야 할 유권자들은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사익에 물든 기성 정치인들의 행태에 식상한 탓도 있을 것이요, 삶에 피곤한 유권자들의 참여열기 자체가 식어버린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역살림을 통째로 맡기는 의식에 지역 주민이 무관심하다면 이유를 불문하고 그 허약한 주인의식을 두둔할 이유는 없다. 모쪼록 유권자들에게서 느껴지는 이 냉기가 단호한 심판과 선택을 앞둔 주인 된 자의 냉철함에 근거한 것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따라서 선거도 축제는 분명하되 차분한 축제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유권자의 냉정함을 뒤흔드는 정직하지 못한 ‘바람 정치’ ‘선언 정치’를 거부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렇게 5월의 축제가 끝나고 나면 바로 6월의 독일 월드컵 축제가 지구촌을 또다시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갈 전망이다. 조짐은 벌써 이곳저곳에서 보이고 있다. 달아오른 언론을 필두로 우리 사회는 지금 ‘6월의 축제’를 착실히 준비하고 있다. 붉은 악마는 물론이고 언론, 정치권, 경제계에 이르기까지 다시없을 역사를 대하듯 월드컵에 올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왜 이토록 우리는 스포츠, 그것도 축구에 열광하는 것일까? 혹자는 우리가 언제부터 이런 3류 스포츠 공화국의 시민으로 변신했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스포츠가 갖는 매력을 곰곰이 곱씹어 보아야 할 가치가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경험했듯이 축구는 국민통합의 에너지를 확산시킬 수 있는 기폭제다. 당시 히딩크 감독이 이끈 한국 팀은 그의 탁월한 리더십과 어우러져 피나는 체력훈련과 강인한 정신력, 거기에 국민적 성원이 어우러져 4강 신화를 이뤄냈다.
축구의 매력은 현란한 기술과 골 결정력이다. 여기에 문화 코드가 어우러져 우리를 감동시킨다. 각 국 대표선수들의 유니폼과 장신구, 독특한 골 세러머니, 거기에 경기장 밖의 각종 이벤트는 축구의 재미를 한층 더 높여준다.
그래서 축구에는 ‘아트 사커’라는 말까지 동원되고 있다. 아트 사커의 진수는 역시 브라질과 프랑스 축구다.
이 아트 사커의 반대말은 동네축구다. 동네축구에는 헛발질도 있고 개발질도 있다. 그래도 보는 이들로 하여금 고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역시 우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런 축구가 정치와도 무한한 함수관계를 갖게 한다. 지도자의 리더십 그리고 한 치의 사사로움이 개입할 수 없는 엄격한 룰, 그리고 열광하는 관중, 그 관중들이 정치에 가장 민감한 계층이라는 것을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이 알아야 한다.
지금 영국을 리드하고 있는 토니 블레어 총리도 축구광이다. 그가 집권하기 전 축구와 관련된 많은 공약을 내, 이른바 토니블레어 프로젝트라는 별명으로 축구팬들 사이에서 회자되기도 했다. 우리의 지방자치단체장들도 축구와 정치의 함수관계를 이참에 배웠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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