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이는 말썽꾸러기다. 우리 반 개구쟁이 가운데 둘째가라면 서러운 아이다. 그렇다고 눈에 띄게 공부를 잘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성철이가 쓴 일기를 읽을 때 나는 고대 문자를 해독하는 역사학자의 심정이 되고, 수학 시간 창 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걸 볼 땐 참을 인자를 되뇌며 차라리 내가 고개를 돌린다. 게다가 툭하면 여자 아이들 울려 놓기 일쑤고, 화가 나면 주먹다짐도 한다. 그런데 나는 그런 성철이가 도대체 밉지가 않다. 아니 미워할 수 없다.
그림책을 읽어 줄 때 스펀지가 물 먹듯 쏙 빨려 들어오는 눈빛. 내가 뭘 묻기라도 하면 기발한 생각을 거침없이 말해 아이들과 나를 깜짝 놀래키는 성철이. 무거운 짐을 들고 오는 날 보고 뛰어와서는 내 짐을 휙 낚아채서 성큼성큼 앞서가는 아이. 그 아이를 감히 어찌 미워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성철이 때문에 나는 참 많이 웃고, 또 벅차오르는 감동 때문에 목울대가 뻣뻣해지곤 한다.
나는 교실이란 공간을 아이들을 가르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가르치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꺼내 주고 나눠주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교실이 아이들과 내가 함께 배워나가는 공간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솔직히 나는 그림책을 읽어주며 잃어버린 상상력을 아이들에게서 얻어 채우고, 미처 못 본 그림 속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듣는다. 아이들이 무심결에 툭 뱉는 한 마디가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고 소중한 배움이다.
마음을 여니 모든 게 공부고 깨달음이 되는 걸 아이들에게 배웠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당당히 말하고, 못하는 것을 돌아보며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는 모습. 성철이와 같은 아이들이 나에게 가르쳐 준 참된 공부였다.
그림책을 읽어주고 시작한 수학 시간. 펄펄 살아 뛰는 생선 같던 성철이가 상념에 젖어 비 온 뒤 안개 속에서 말갛게 얼굴 드러내는 앞산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그래도 나는 성철이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지금 저 아이 모습이 축 늘어진 호박 잎사귀 같아도 스스로 무능력하다고 자책하지 않는 한, 언제 그랬냐는 듯 비 온 뒤 넌출넌출 자라는 호박잎사귀처럼 살아날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거침없이 뻗은 호박 넝쿨에 늙은 아낙의 궁둥이만한 호박이 열리듯 성철이의 삶이 넝쿨넝쿨마다 옹골찬 결실이 맺어지리라 나는 감히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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