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182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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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1820원

  • 승인 2006-05-02 00:00
  • 김중겸 건양대 석좌교수김중겸 건양대 석좌교수
장발장은 프랑스 문호 빅톨 위고가 쓴 레미제라블의 주인공이다. 직업은 나뭇가지를 치는 일이다.일년 내내 일거리가 있는 건 아니다. 누나와 조카들의 생계를 책임졌다. 너무 배 고파서 빵 한 조각을 훔치다 잡혔다. 스물 다섯 살 때다. 대가는 징역 5년. 몇 번의 탈옥 실패로 19년을 복역했다.

서울에서 스물 아홉살 청년이 절도죄로 체포됐다. 사흘 동안 아무 것도 못 먹었다. 너무 배가 고팠다. 허름한 구멍가게 지붕을 뚫고 들어갔다. 들어가자 마자 주민신고로 경찰이 출동했다. 너무 당황해 빵을 집어 먹을 생각도 못했다. 금전출납기에서 1820원을 집어 들고 나오다 그 자리에서 붙잡혔다.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자동차 정비사 자격증을 땄다. 군대도 갔다 왔다. 지방의 카센터에 취직했다. 월급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예 못 받을 때가 많았다. 서울로 올라왔다. 막노동판을 전전했다. 지하도와 다리 밑에서 노숙했다. 일주일 전부터 그나마 일이 없었다. 참고 또 참았다. 그러나 그만 도둑질을 하고 말았다.경찰관이 가져다 준 2000원짜리 도시락을 허겁지겁 먹어댔다. 훔친 돈의 액수가 적은 것이 도움이 되었다. 정상이 참작되어 그냥 풀려났다.

굶주린 사람이 수중에 돈 한 푼 없을 때는 둘 중에 하나를 택할 수 밖에 없다. 배가 고프다. 먹기는 해야 한다. 구걸을 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다. 도둑질을 하는 것이 또 하나의 방법이다.

세상에는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무전취식을 한다. 절도나 강도를 하다 잡힌다. 특색이 있다. 굶주림에 쫓겨 이것저것 생각지 않고 죄를 짓게 된다. 대책없이 범행을 한다. 잡히면 벌을 받게 된다는 점에 생각이 미치지 않는다. 장래를 걱정할 겨를도 없다. 당장이 절실하다. 결국 교도소와 사회를 왕래한다. 인생유전이다.
다른 형태의 굶주림도 있다. 미국은 인도보다 잘 산다. 그런데 절도는 미국이 인도보다 많다. 일정한 직업이 있다.
수입도 좋아 풍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훔치거나 강도짓을 한다. 욕망의 굶주림이다. 돈이 있어도 욕망의 크기는 가진 돈보다 더 크다. 욕망 충족을 위해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상대적 결핍감이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 범죄의 길로 나선다. 부시 미 대통령의 국내정책 보좌관 클로드 엘런이 대표적이다. 연봉이 약 1억 5800만원이다.

지난 1년 동안 이곳저곳의 할인점에서 절도행각을 했다. 스물 다섯 번에 약 490만원 어치였다. 일보다는 가족들과 함께 지내기 위해서 사임한다 했다. 그럴싸하다. 실은 경찰 수사망이 좁혀 오자 그만 두었다. 좀도둑질을 한 죄로 체포되었다.

금융기관 강도가 늘고 있다. 더 늘어 날 것이다. 대부분 카드빚을 비롯해 빚에 쪼들리는 사람이다. 돈이 언제나 고여 있는 금융기관만이 대상이 아니다. 보험범죄도 눈에 띈다. 많은 채무를 안고 있는 사람은 소액절도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 채무초과생태가 일상적이 되면 헤어나지 못 한다. 일확천금을 노린다. 강도에 나선다.

백화점이나 할인점 등에서 물건을 훔치는 사람도 많다. 대개가 먹고 살 만한 사람이다. 자전거나 자동차를 훔치는 범죄도 늘고 있다. 짜릿한 스릴을 맛보기 위해서다.

오늘날 생활곤궁형 범죄는 감소하고 있다. 반면 생활향락형 범죄는 증가하고 있다. 그래도 욕망이 빚어내는 향락형 범죄는 개인의 욕망 다스리기가 관건이다. 그러나 곤궁형 범죄는 국가가 나서야 한다. 복지란 바로 그런 것이다. 프랑스 혁명기에 루이 16세의 왕비 앙트와네트가 한 마디 했다. 먹을 빵을 달라는 군중을 향해서였다. 빵이 없으면 쿠키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 했다. 이래서는 국가가 아니다. 사흘 굶어 담 넘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돈이나 기업을 자식에게 물려 주려고 저지르는 범죄는 무슨 유형의 범죄일까? 곤궁형도 아니고 향락형도 아니다. 범죄학자들이 머리를 싸맬 일이다. 떠날 때는 너나 없이 빈 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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