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출범 때만 해도 우리 국민은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란 기대감에 충만했었다.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가 자리잡고 지역 간 차별이 없어지고 열심히 땀흘려 노력하는 자가 우대 받는 세상, 경제가 활기차게 돌아가고 시민생활이 보호받는 안전한 사회를 꿈꿨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중요한 시기를 너무도 쉽게 잃어버렸다.
이제 5·31선거를 맞게 되지만 3년 전에 비해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진정 새로움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요즘의 5·31선거를 둘러싼 정치권을 들여다보면 좀 더 명확해진다. 상대 후보 상처내기식 비방이나 무차별 폭로전, 자신의 당선을 위해서는 도덕과 원칙은 무시되어도 좋다는 파렴치한 한탕주의가 치유하기 어려운 깊은 병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제 이쯤 했으면 성숙한 정치판이 이뤄졌을 법도 한데 아직도 명색이 민주주의가 각 정당이나 정과의 이해득실에 따라 매일 싸움질의 수준에서 맴돌고 있으니 그 저질스러움에 짜증 또한 숨길수가 없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후보 경선이나,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고 럭비공처럼 튀는 분열상은 정치불신의 도를 넘어선 지 오래다.
그렇다고 정치만 후진성을 벗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 국민은 정치가 잘못되고 있다고 비판하고 한탄하면서도 편가르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지역 간의 문제만 해도 그렇다. 특히 후보가 난립양상을 띠게 되면서 지역감정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려는 경향이 노골화되고 있어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마당에 벌써 광역자치단체장 지방세력간의 누구와 누구의 2파전이 유리한지 혹은 3파전이나 다자대결이 유리한지 은밀한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즉 누구와 누가 붙으면 지역감정으로 표가 양분되고 누가 나오면 갈라먹고 하는 식인 것이다.
게다가 고질적인 지역감정의 틈바구니를 겨냥한 또 다른 움직임마저 엿보이는 실정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앞으로 있을 정치적 변화와 더불어 보복과 원한만이 온 나라에 퍼지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 어떻게 고향이 같고 지역이 같고 종교가 같다고 그 사람에게 자치행정을 맡기고 우리의 삶을 맡길 수가 있단 말인가.
지난 수십년 간의 정치역사는 우리에게 분명 상처로 남아 있다. 때문에 다가올 선거에서 누가 집권하건 한국의 정치는 또 다른 변혁을 겪지 않을 수 없다. 개헌을 포함한 정계개편이 벌어질지도 모르며, 신구세대간의 정치판 물갈이는 아마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개혁과 변화 속에서 그 중심에 서야 할 우리 국민들이 힘을 모으지 않고 아직까지도 지역연고에 매달리고 분열상만 내보인다면 분명 우리에게 21세기는 없다.
누구를 선택하든 그가 선택받은 권력을 국민과 국가를 위해 바르게 행사할 수 있도록 힘이 돼주어야 한다. 아울러 권력의 남용과 독선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채찍을 가해야 하는 역할도 우리 국민에게 주어진 책임이다.
국민이 침묵하고 용기있게 말하지 않을 때, 정치권력은 보다 더 기승하며, 뒤에서 지역정서가 어떻고 학연이나 혈연을 찾으며 줄대기를 할 때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인 것이다. 이젠 선택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구태의 답습인가, 개혁인가?’ ‘도약의 새 세기인가, 불확실한 미래인가?’의 두 갈래 길엔 한국의 정치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국민의식이 변하는 만큼 정치변화의 폭과 깊이도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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