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골프장이 들어서 있고, 부근에 대학교와 몇몇 기업체 연수원이 자리하고 있다. 30여 년 전에는 나무에 대하여 연구를 하고, 산에 심을 어린 나무와 유실수, 정원수 묘목을 기르던 곳이다.
그곳은 나무와 관련된 일을 하는 곳이기에 봄은 더 힘들고 바쁜 계절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봄철이라 몸이 노곤할 때인데 낮이면 하루 종일 산으로, 묘포로 돌아다녔으니 밤이 되면 깊은 잠에 빠져들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문틈으로 어딘가로 들어오는 향기를 따라 나도 모르게 밖으로 나가 보았다. 백목련 우아하게 피었다가 진 것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분주하게 지내던 때였는데, 그날 밤에 보는 하얀색, 자주색 라일락꽃은 은은한 달빛을 받으며 실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면서도 제가 지니고 있는 것은 오로지 그것뿐이라는 듯이 은근한 향기를 끊임없이 흘려 내보내고 있었다.
라일락 나무는 낙락장송처럼 기품이 있거나, 사시사철 늘 푸른 기상을 자랑하는 나무도 아니고, 풍성한 열매를 안겨주지도 못하면서, 가늘고 휜 가지에 꽃송이나 매달고 있으니, 어찌 보면 나무로서의 볼품은 별로 없다. 더구나 꽃조차도 화려하거나 고운 빛깔을 뽐내는 것이 아닌 평범한 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젊은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동양이나 서양이나 사랑을 이야기하는 노랫말에도 자주 나오는 꽃으로서 우아한 이미지를 가지는 것은 나름대로의 매력 있는 향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라일락꽃 향기를 맡으며, 나는 지금껏 한번이라도 또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향기를 주어 본적이 있는지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지금 화창한 봄날과도 같은 너의 젊은 시절이, 향기가 배어나오는 인생을 위한 밑거름으로 착실하게 준비하는 시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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