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선거에 나설 분이라 거론 자체가 부담스럽지만, 일찍이 고건 전 총리의 선친은 공직에 나서는 아들에게 세 가지를 당부했다. “누구 사람이라고 낙인찍히지 마라. 남의 돈 받지 마라. 술 잘 먹는다고 소문내지 마라.” (고건 외 지음 『아버지의 추억』 중에서)
당사자는 마지막 주문만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는데, 사실 우리 사회와 같은 ‘천민자본주의’ 아래서 두 번째만큼 지키기 어려운 계율도 없을 것이다. 선거 때마다 공천비리가 끊이지 않고, 이권을 위해 돈다발을 거래하는 관행이 이를 반증한다. 재계 1, 2위의 그룹 총수들마저 앞 다투어 검찰을 드나드는 것을 보면 돈 앞에 자유로운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공직에 있다보면 자의든 타의든, 계보에 따라 나뉘는 것 또한 피하기 쉬운 일이 아니다. 좁은 국토에서 학연?지연?혈연으로 얽히다보면 자연스럽게 누구 인맥이라고 지목되고, 시장?지사??함께 근무했다는 이유만으로 동일계보로 간주하는 게 편 가르기에 익숙한 우리의 정치문화다. 승진하려고, 또는 공천을 따려고 계보원을 자처하는 것도 흔한 경우다.
6, 7년 전 어느 날, 하루아침에 나 역시 특정계보로 분류된 적이 있다.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총리로 간 뒤 내각제 추진을 두고 당과 이견을 보이던 미묘한 시기였는데, 내가 김용환 수석부총재에게 긴밀한 조언을 한다는 게 보도의 요지였다. JP가 당직을 맡겨줄 때까지 사실 나는 김 부총재와는 별다른 인연이 없었다. 내각제는 내 소신도 아니다.
하지만 내각제를 공약으로 권력을 나누어 가진 이상 대국민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믿었다. 결국 나는 자민련을 탈당하여 새로운 당을 만들자고 권유했다. 언론이 제대로 예측한 셈이었다. 그러나 어디 당을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인가. 희망의 한국신당 창당 작업은 시작하는 순간부터 걸림돌과 벽에 가로막히기 일쑤였다.
존립기반을 놓고 비교할 때,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성심당과 고려당은 한 치의 차이도 없다. 전자든 후자든 품질과 신뢰를 바탕으로 잘 팔리면 성공하고, 안 팔리면 다음 날로 망한다는 냉엄한 시장논리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하물며 국민중심당 같은 신생정당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정치소비자인 유권자가 선택하면 정권창출도 가능하지만, 유권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면 언제든 와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충청권의 정치공백과 충청인의 정치적 허무주의가 팽배한 시점에 탄생한 국민중심당에 ‘국민’이 모이지 않고 ‘중심’이 보이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그 내부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구멍가게도 브랜드로 승부하는 시대에, 대외적 브랜드 파워와 이미지 향상에 공을 들이지 않고 당내 파워에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지지자들의 등을 떠밀게 될 것이다.
정당은 근본적으로 무리(정체성)와 잔치(흥행성)를 동시에 의미하는 파티(Party)의 함의에 충실해야 한다. 그리고 전국적, 세계적 브랜드와 맞서온 토착기업 성심당에서 배워야 한다. 거창한 이름과 현란한 구호 대신, 지역민들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지 차근차근 설명하고, 배타적 지역감정과 포용적 애향심이 어떻게 다른지 진정으로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나의 모든 것을 내던지고 남의 손을 잡아야 한다. 빵이 팔리지 않는 마당에, 간판만 지킨다고 무슨 이득이 있는가.
“선거란 최악(Worst) 가운데 차악(Worse)을 고르는 것”이라는 모리스 뒤베르제의 오래된 명제는 선거의 양태를 희화화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게 그거”라고 기권하지 말고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한다는 권유이기도 하다. “우리야말로 최악은 아니다”라는 설득은 선거에 나서는 모든 정당의 몫이지만, 절체절명의 국민중심당에게는 이후의 존폐를 가르는 막중한 과제다. 선거라는 제로섬 게임 앞에 필사즉생(必死卽生)만큼 귀중한 교훈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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