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매독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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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매독환주

  • 승인 2006-04-26 00:00
  • 황승기 대전남부교회 담임목사황승기 대전남부교회 담임목사
한비자(韓非子)에 보면 매독환주(買 還珠)라는 말이 있다. 춘추시대에 초나라의 어떤 사람이 진주를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을 팔기 위해 그는 향기 나는 좋은 나무로 함을 만들고, 그 함에 문양을 새기고 여러 가지 보석을 박아 그 함을 아름답게 꾸몄다. 그리고 그 상자 안에 진주를 담아 시장에 나갔다. 먼 나라에서 온 사람이 그의 물건을 사려고 했는데, 진주보다는 진주를 담은 함에 더 마음이 끌렸다. 결국 그 사람은 진주를 담은 함만 사고, 정작 팔려고 내놓았던 진주는 주인에게 돌려주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이 말을 우리 주변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로 치환하면, 주객전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내용보다는 외형을 더 중시하고, 본질적인 일보다는 부차적인 문제에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외모를 중시하는 외모지상주의나 ‘명품 신드롬’의 확산은 이러한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오랜 시간 속에서 우러나오는 사람의 따뜻함과 정감보다는, 전시하고 과시하려는 ‘상품’만이 가득한 세상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다.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결혼도 그렇다.

결혼은 두 사람의 남녀가 고와 낙을 같이 할 인생의 반려자를 정하는 일이다. 성경의 표현대로 ‘둘이 합하여 한 몸’이 되는 것이 결혼이기에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두 사람의 사랑과 신뢰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결혼에 있어 중요한 것은 사람이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사랑과 신뢰가 우선적으로 형성되어야 한다. 사랑과 신뢰라는 본질이 도외시되어진 결혼에는 반드시 문제가 발생한다. 사람의 가진 것이나, 사람을 둘러싼 조건과 환경만이 우선되어지면 그것은 거래가 되는 것이며, 이러한 결혼은 불행의 시작이 된다. 이혼과 그로 인한 결손가정 자녀들의 문제는 본질을 잃어버려 생긴 문제다.

신앙생활에 대해서도 이러한 면을 지적할 수 있다. 신앙의 본질적인 면은 소홀히 하고, 부차적인 면이 더 요란스럽게 진행되는 일이 있다. 신앙의 대상은 하나님이다. 신앙은 어떤 다른 존재를 신앙하고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자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이며, 예배는 그 하나님께 경배하는 일이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아계신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다. 기독교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자신을 죄악 가운데서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예배이고, 그 가운데서 예배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과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예배의 포커스가 하나님에 대한 헌신과 경배에 있지 아니하고, 사람의 감동과 기쁨에 맞춰지면 이것은 본질에서 벗어난 일이 된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이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참된 신앙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인데, 하나님에게서 눈을 돌려 인간의 기쁨과 감동에 초점이 맞춰지면 그 결과는 참된 신앙이 실종되어지는 것이다.

한비자는 어지러운 시대에 국가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올바르게 통치하기 위해서는 공명정대한 법적 리더십이 있어야 함을 강력하게 역설했고, 매독환주의 일화를 통해서 지도자는 본질이 무엇이고 부차적인 일이 무엇인가를 올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함을 말한 것이다. 가치가 혼란스럽고, ‘가치 부재(不在)의 시대’라고까지 말하여지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본질이 무엇인가를 되새기고, 그 본질을 지키기 위한 원칙에 충실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본질이 기억되고,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노력이 있을 때에, 그 사회와 조직과 도모하는 일은 올바른 방향과 목적한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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