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이 이토록 기억에 남는 것은 스무 살 북한 처녀 이화 때문이다. 목숨을 걸고 탈북한 그녀는 아는 언니에게 속아 이 시골 마을에 팔려와 있었다. 말도 통하지 않고 물도 산도 다 낯선 곳에서 우리를 보자마자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신세 한탄을 할 만도 한데 이화는 그저 손만 꼭 잡는다. 우리 일행도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와 헤어져 나오는 길에 내가 하고 있던 목도리를 그녀 목에 둘러주고 오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녀는 추운데 자기에게 목도리를 주고 가면 어떻게 하느냐며 되레 내 걱정을 한다. 헤어지기 전 그녀와 함께 뜨거운 포옹을 하였다. 연민과 동정, 미안함과 안타까움, 그 감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감상에 젖은 나에게 그녀는 굳은 의지로 말했다. “우리 통일되면 꼭 다시 만나요.” 순간 얼마나 아찔했는지 모른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통일을 생각할 수 있지? 그동안 교단에 서서 통일에 대해, 통일의 당위성에 대해 수십 번 수업을 했지만 내가 얼마나 무감각하고 메마르게 통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는지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바로 얼마 전 ‘통일 말하기 대회’라는 교과서에 실린 글을 읽다가 그녀 생각이 났다. 통일에 대해서 진지하게 얘기해볼 요량으로 아이들에게 “통일이 되면 무엇이 좋을까?”라고 질문을 했다. 손을 번쩍 든 아이가 “군대에 안 가서 좋아요”라고 대답을 한다.
‘통일이 되면 군대에 가지 않는다?’ 이 대답이 통일에 대한 우리 학생들의 생각을 극명하게 표현해 주는 것은 아닐까? 통일은 이제 ‘우리의 소원’이 아니다. 나 역시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하여 다시 중국 공안의 무자비함 속에서 대사관 담을 넘는 북한의 동포들을 보면서도 그렇게까지 가슴 아프지는 않았었다. 적어도 이화를 만나기 전에는!
이제 통일의 필요성마저 부인하는 아이들에게 지금 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통일 교육 사이트에 들러 아이들에게 필요한 자료를 찾아 함께 보고, 문화어와 표준어를 비교하며 재미있는 말에 함께 웃는 것 외에 무언가 더 할 것이 있을 텐데 말이다.
이산가족의 상봉이 계속되자 그 감격이 시들해지는 것처럼 해마다 시끌시끌하게 치러지는 통일 행사에 우리는 무감각해진 것 같다. 이제는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통일의 당위성에서 나아가 통일 이후에 대해서 준비해야 할 때다. 그런데 정작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오늘따라 그녀가 더 생각난다. 이렇게 을씨년스러운 날, 그녀는 버려진 듯한 그곳에서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꼭 다시 만나자고 했던 그 약속이 내 가슴에 이렇게 살아 숨쉬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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