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말하자면, ‘선거공약에 기간, 목표, 공정, 재원, 나아가 우선순위’라는 구체적 계약을 담는다. 그리고 이를 공식적으로 문서화하여 선거기간 중에 공표하고 국민과 계약을 맺는다. 국민들은 매니페스토에 기초하여 정당이나 후보자들의 정책을 선거를 통해 구매한다. 당선된 후보자나 정당은 유권자들로부터 정책에 관해서는 통치권(mandate)을 위임받는다.
영국에서는 1834년부터 사용되어 왔으며 지난해 2005년 총선에서도 노동당, 보수당, 그리고 자유당은 각기 매니페스토를 발표하였다. 미국의 선거에서도 매니페스토는 자주 등장했다. 예를 들면, 1990년대 공화당 하원의장을 지낸 뉴트 깅그리치는 보수주의 계약 (conservative contract)이라는 매니페스토를 통해 압도적으로 미국인들의 지지를 확보했으며 1990년 미국사회의 보수화 운동을 이끌었다.
매니페스토가 한국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우선은 후보자들이 매니페스토를 실천하고자 하는 정치적 의지가 있어야 한다. 시민단체에서 전개하는 매니페스토 운동의 ‘스마트(SMART) 원칙’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를 스스로 검증해야 한다. 그리고 선거가 권력의지를 불태우는 이전투구장이 아니라 정책을 사고 파는 시장이라는 사고를 해야 한다.
5?1 지방선거 출마자들에게 앨 고어는 좋은 귀감이 될 것 같다. 앨 고어는 1998년에 미국 대통령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 앨 고어는 유권자 투표에서는 승리했지만 선거인단 선거에서는 부시에게 패했다. 플로리다주에서 부정투표 시비가 있었지만 앨 고어는 선거결과에 승복했다. 2002년 선거에서 앨 고어는 선거에 나서지 않았다. 미국 선거 역사를 돌이켜 보면 유권자 투표에서 승리했지만 선거인단 선거에서 승리를 도난 당한 후보자에게 미국유권자들은 관대했다. 그래서 다음 선거에서 선거인단제도 때문에 패배한 후보자가 본선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앨 고어는 2002년 선거에 도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2002년 선거가 동일한 정책을 놓고 동일한 후보끼리 대통령 선거전을 펼치게 될 경우, 미국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민주주의 발전에 해를 끼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앨 고어와 같은 정치인이야말로 ‘정책’을 중심에 두고 ‘선거정치’를 생각하는 표본이다.
둘째로, 매니페스토가 한국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의 정치문화가 변해야 한다. 유권자들이 연줄중심으로 인물중심으로 투표한다면, 어떤 후보자가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서 공약을 계발하겠는가? 5.31 지방선거에서는 정책중심으로 선거하자. 그렇게 함으로써 정치엘리트들이 정치를 정책을 중심에 놓고 사고하도록 강제하자.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신행정 수도 충청건설’이라는 구체적 공약을 제시했다. 노무현 후보는 충청인을 포함한 단순 다수의 정치연합 (minimalist coalition)을 획득하여 집권에 성공했다. 분명히 노무현후보는 ‘신행정 수도 건설’에 관해서 권한위임(mandate)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서울.경기 유권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선거가 정책을 통한 권한 위임임을 다수 유권자들이 인식해야 한다. 행정수도 이슈처럼 유권자들이 선거계약을 위반하는 사례는 정책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매니페스토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후보자뿐만 아니라 유권자의 정치 문화적 혁신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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