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선 볼 수 없는 영화들이 있었다. 이유와 경위가 어떻든 “볼 만하다” “썩 잘됐다”는 영화를 귀로 접하는 건 가슴아픈 일이었다. 과거를 훌훌 털어버리고, 대전서도 이른바 ‘아트 영화’를 볼 수 있게 됐으니 반갑다. ‘대전아트시네마’가 오늘 문을 연다. 개관 기념 상영작은 조지 클루니 감독의 ‘굿 나잇 앤 굿 럭’(Good night, and Good luck).
1950년대 미국의 ‘매카시 열풍’
진실에 맞서는 기자들의 이야기
조지 클루니 감독. 각본까지 맡아
빗나간 권력을 바로잡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미래 독재사회를 그린 영화 ‘브이 포 벤데타’는 시민들의 깨인 의식을 들었지만, ‘굿 나잇…’은 그런 총론에서 나아가 각론을 제시한다. 진실을 말하는 용기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에 맞서는 힘이라고 들려준다. 진실을 캐낼 수 있는 능력과 말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지식인, 특히 언론인들에게 ‘진실을 말할 용기가 있는가’라고 묻고, 소명을 일깨운다.
영화의 무대는 1950년 초, 미국 CBS 방송의 뉴스 스튜디오. 당시는 조 매카시 상원의원이 이끄는 특별조사위가 공산주의자로부터 미국을 보호한다며 이념적 숙청을 벌이던 때다. 빨갱이로 찍힐까봐 아무도 나서지 않던 시절. 시사 프로그램 ‘시 잇 나우’(See It Now)의 앵커 에드워드 머로는 매카시 광풍에 정면으로 맞선다. 강제 퇴역당한 사병의 이야기를 다룬 지방신문의 기사를 탐사 보도하면서, 머로(데이비드 스트라던)와 프로듀서 프레드(조지 클루니)는 이 인권침해의 뿌리에 매카시 의원의 편협한 공산주의관이 자리하고 있음을 신랄하게 파헤친다.
이 영화의 미덕은 기자들의 용기를 추켜세우면서도 그들이 가진 두려움도 솔직히 드러낸다는 점. 신념을 갖고 있으면서도 “혹 우리가 틀리면 어쩌지”하고 겁을 내고, 사주는 용기 있는 기자를 두둔하면서도 “이러다 오히려 수많은 기자를 잃는 건 아닌가(폐업하는 건 아닌가)”하고 고뇌한다.
실제 인물과 실화를 바탕으로 그린 스토리는 긴장감 넘치고 흥미롭다. 흑백으로 담은 영상은 그러나 부드럽고 우아하다. 흑백으로 과거의 한 순간을 비추는 절제된 화면은 이 영화의 강점. 단순한 화면은 주제를 명료하게 전달한다. 방송국 내부를 오가는 정교한 카메라는 뉴스를 진행하는 머로의 시선, 손에 들린 담배를 비추며 인물의 심리와 상황에 담긴 뉘앙스, 공기를 포착해낸다.
눈길보다 귀가 더 즐겁다. 영화 속 머로는 이렇게 말한다.
“이견과 배반을 혼동하지 맙시다. 명심할 것은 고발이 곧 증거가 아니며 죄의 유무는 법정에서 가려져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 역사의 교훈은 이런 광기어린 공포가 부르는 비극적 결말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락 프로가 점령한 어느 일요일 밤엔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귀 기울이게 합시다. 한두 주 후엔 코미디 쇼 대신 중동정책에 대해 국민들이 관심을 갖게 합시다. 그런다고 광고 기업의 이미지에 손상이 갈까요? 그런다고 주주들이 분노해 데모라도 벌일까요? 국가와 기업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사안에 대해 약간의 시간을 빌어 국민을 계몽한다고 해서 당장 방송국이 망합니까?”
할리우드 유명 배우 조지 클루니가 감독한 작품으로 화제가 됐으며 각본 역시 그가 썼다.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 최우수각본상을 수상한데 이어, 전미 비평가협회 선정 ‘올해의 영화’로 꼽혔다.
제목 ‘굿 나잇…’은 머로가 ‘시 잇 나우’를 마칠 때마다 했던 멘트다. 12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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