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오후 동학사 여스님이 찾아오셨다. “저는 동학사 길상암 스님으로 문서영 학생을 어려서부터 키워 지금 중학교를 다니게 하고 있는 보호자입니다. 서영이는 어디에선가 태어나 저의 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요즈음 서영이는 가끔 집으로 오지 않고 친구네 집으로 가서 2,3일씩 묶고 학교를 다닌다기에 찾아왔습니다. 서영이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도 원하면 보내주고 후일 결혼도 원한다면 시집도 보낼 것입니다.”
반 학생들 얘기로는 서영이를 데리고 있는 스님은 서영이가 언 손으로 열심히 청소를 해도 “이걸 청소라고 했느냐”꾸짖고 손에 가시가 찔리도록 나무를 해 오게 시킨다는 것 이었다. 그리고 절에 오는 신자들에겐 천사같은 말만 하고 서영이에게는 ‘팥쥐엄마’같다는 것 이었다. 그러나 스님은 “제가 시키면 얼마나 일을 시키겠습니까. 아침 일어나면 학교가기도 바쁘고 나무는 무슨 나무입니까 ”하는 것 이었다.
나는 반 학생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서영이가 불쌍하다고 차표를 주고 고구마를 싸다주고, 용돈을 주고, 2,3일씩 재워주고 하루는 이 친구, 내일은 저 친구 데리고 가지 마라. 아마 한집에서 10일 이상만 데리고 와도 너희 부모님들은 싫어할 것이다. 스님은 수업료는 물론 서영이의 모든 인생을 책임지고 키워주실 분이시다. 괜히 바람만 넣지 마라.”
그러나 나의 훈시는 공염불이 되었다. 서영이 문제로 스님과 전화 통화도 하고 절도 찾아가 상의도 하였다. 그 후 방학은 시작되고 스님은 서영이가 집으로 오지 않았다는 것 이었다. 학생들에게 수소문 하여 서영이가 묶고 있는 계룡산 상신골 먼 산골, 버스도 없는 길을 걷고 또 걸어 서영이를 찾아내어 데리고 오는 데 서영이는 자꾸만 친구와 함께 나와 거리를 두는 것 이었다. 담임도 아닌 아빠도 아닌 형사 같은 느낌이 들어 슬펐다.
그 후 바람 부는 어느 날 서영이가 절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말 가슴이 철렁했다. 당장 스님이 싫어 떠났다지만 서영이 앞날에 고생의 파도가 밀려올 것이 뻔했다. 서영이와 짧았던 인연이지만 얼굴도 곱고 공부도 잘했던 귀여운 서영이, 밤이면 사랑스런 어린 두 아들과 아내를 재우고 밤 깊은 시간 서영이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내가 서영이에게 설명한 것이 잘못 이었구나. 반 친구들처럼 과자도 사주고 대화도 나누고 쪽지 편지도 할 걸, 후회가 밀려왔다. 어미도 모르는 불쌍한 작은 새. 나는 왜 서영이 마음속 고향의 애비가 못 되었던가. 세월 흐른 지금도 보고 싶은 서영이, 가끔 깊은 밤 생생히 떠오르는 서영이 얼굴을 그려본다. 어디에 살고 있는지, 그 사람 남편이라도 서영이를 불쌍히 여겨 잘 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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