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에세이] AP통신 연감(年鑑)과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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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에세이] AP통신 연감(年鑑)과 추기경

  • 승인 2006-04-18 00:00
  • 이용웅(목요언론인클럽 회원)이용웅(목요언론인클럽 회원)
카디날(Cardinal) 스테판(Stephan) 수환(Sue Hwan) 김(Kim).
박정희 유신 독재 정권에 숨죽이던 1970년대 중반, 그러니까 1975년 또는 1976년 쯤으로 기억된다.
영국 로이터와 함께 세계적인 통신사인 미국 AP 연감(年鑑) 카디날(추기경) 명단에 오른 한국의 김수환(金壽煥) 추기경 이름이다.

1969년 서울대교구장에 이어 추기경에 서임된 김 추기경은 순교자의 피로 물든 한국 천주교의 첫 추기경이 된데다 40대 추기경이어서 이미 세계적인 이목을 끌고 있었다.

합동통신(현 연합뉴스 전신) 기자인 한 선배가 충북 청주 충청일보사에 업무차 들렀다 내게 준 이 선물(AP연감) 덕분에 며칠간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며 밤잠을 이루지 못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 연감이 두려움의 대상이 된 것은 불온서적 소지자에 대한 공안당국의 보안법 적용 등 당시의 시대 상황과 사회 분위기가 바로 그러했기 때문이다.

사실 AP연감은 세계 각국의 지리와 역사·인구·인종·종교·문화·제도·군사·문물·산업·GNP 등 외에 지진이나 재해 등 역대 주요 사건·사고 일지와 전년도의 세계토픽 및 주요 사건·사고, 역사에 깊이 남을 업적 등이 수록된 명실공히 세계 최고 권위의 연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두려움의 대상으로 다가온 것은 당시 터부시 되어온 남북 관련 내용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알파벳 순(順)에 따라 아시아 나라 중 북한(North Korea)은 우리나라(South Korea) 보다 먼저 소개되는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바로 각 나라 국기(國旗)였다. 난생 처음 북한의 인공기(人共旗)와 우리 태극기를 함께 대하는 순간 가슴이 쿵당거리기 시작했고 마치 불온서적을 보는 것 같아 두려움이 가시질 않았다. 지금이야 웃음거리 같은 얘기지만 당시로선 인공기를 본다는 자체가 불가능한 시절이었다.

아무튼 이 연감을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됐다. 한국 역사(1945년 8월 15일 해방과 함께 시작됨)와 북한 역사(단군시대부터 시작됨)가 다르게 기술 됐다는 점 등등. 특히 이 연감에는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남북 최고 통치자로, 김수환 추기경이 전세계 100 추기경 명단에 각각 올라있었다.

각 나라 원수야 당연한 일이겠지만 인물 소개의 경우 노벨상 수상자와 추기경만이 별도로 소개돼 있다는 점에서 추기경 자체가 전세계적인 인물임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주지하다시피 김 추기경은 명동사건(1976년 3월 1일 민주선언)을 비롯해 지학순(池學淳) 주교 사건(1974년 7월 23일 유신헌법무효 양심선언),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1974년 7월 23일 민주화 인권회복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결성한 모임), 광주민주화운동(1980년 5월 18일) 등 1970년대부터 은퇴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민과 더불어 고통과 기쁨을 함께 한 목자(牧者)로 이 나라의 정신적 지도자였다.

최근 우리는 현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鄭鎭奭,니콜라오) 대주교를 또 한 분의 추기경으로 맞게 됐다. 김 추기경 서임 후 실로 37년만의 경사다. 정 추기경은 서임 인사말을 통해 우리 국력이 그만큼 성장했기 때문이라며 국가와 국민들에게 감사 드린다고 했다. 정 추기경은 ‘목동의 노래’, ‘억만인의 신앙’, ‘칠층산’ 등 30여권에 이르는 저서와 번역서를 내놓는 등 가톨릭교회 내에서 교회법의 최고 권위자요, 학자로 통하고 있다.

김 추기경이 살벌했던 유신독재와 전두환 정권에 맞서 싸우며 항상 진리의 목소리로 목자의 역할을 충실히 했듯이 정 추기경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 또한 크다. 아마도 민족의 화해와 통일, 생명윤리, 인격 없는 교육, 인간성 없는 과학, 계층간의 갈등과 양극화 등의 문제가 추기경에게 지워진 십자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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