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가 사가지 않고 버려 둔 골동품중에 우리가 과거에는 신이라 경배했고 님이라 그리워했으며 대지의 어머니라 사랑을 품었던 존재가 있다. 내가 그의 아들이라 의심치 않았으므로 그 존재를 기리고자 흉상을 세우고 기념비를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원시문화의 야만이거나 정신분열자의 환상에서만 그려지는 거울 속 꿈으로 추방되었다. 거울 밖의 현실은 행복한가. 내가 죽으면 내 존재는 빛과 어둠으로 변해 저 거울 속 꿈으로 들어가야 하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이 현실의 유전(流轉)과 무상(無常)은 어느 날 박쥐처럼 날아와서 내 존재의 피를 빨아먹는다.
시간의 물은 흐르고 내 피는 강을 붉게 물들인다. 생명력은 고갈되고 뛰는 심장이 약속했던 기쁨과 슬픔도 그 농도가 엷어진다. 그 피는 이윽고 바다에 풀리고 검고 푸른 영원으로 흡수 될 것이다. 그 피가 마르기 전에 시인은 언어라는 연어새끼를 부화해서 문화의 바다에 보낸다. 연어새끼가 성장한 물고기가 되어 시간의 바다에 풀린 피의 냄새를 맡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길 기대하면서. 가상세계에서 윤회하는 물고기로 영생을 얻을 것을 꿈꾸면서.
르네상스이후 인간의 주체를 과도하게 내세운 문화는 모든 타자를 욕망아래 복종시키는 노예로 만들려하고 있다. 자본과 지식의 폭발이 그 계획을 뒷받침하는 배경인데 당대의 부를 위해 아프리카 노예를 수입했다가 세세년년 업보를 상환해야할 미국의 꼴이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타자는 인간의 지식이 촘촘해질수록 문명이 만들어낸 포경선이 속도가 붙을수록 더 몸집이 커지고 날래지는 고래 같아서 사납게 바다를 휘저으니 쓰나미가 일어나며 허리케인이 플로리다를 강타한다.
그 타자를 내 시에 복권시킨다.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말씀을 드린다. 내 영혼이 어린아이가 되니 그는 인자한 아버지의 눈길로 나를 쳐다본다. 내 영혼이 연인의 눈길을 하면 그는 다정한 미소를 짓는 여신의 아름다움으로 나를 방문한다. 생과 사를 불러일으키는 침묵의 호흡처럼 그는 이 세계와 저 세계에 빛과 그림자로 스며있다. 낮과 밤, 하늘과 바다, 태양과 달의 얼굴로 가면을 바꾸어 쓰거나 만화경속의 만사(萬事)를 연출하는 기획자인 동시에 즐거워하고 춤추는 관객이다. 나도 그 관객의 일원으로 덩달아 즐거워하고 춤춘다. 가없는 시의 만화경 속에서. 가엾은 이미지의 고해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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