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트 러셀.엘리자베스.슈 연기 ‘재미 쏠쏠’
■드리머 주연:다코타 패닝, 커트 러셀
저 애 정말 열두 살 맞아? 혹
다코타 패닝. 숱 적고 가냘픈 금발, 우주에서 내려다 본 지구가 꼭 저렇게 푸르지 싶은 눈동자, 천진난만한 미소를 가진 인형 같은 이 소녀는 외모로는 그만한 나이 또래의 어린아이 맞다. 하지만 연기를 보고 있자면 얼토당토않은 질문이 꼬리를 문다. ‘징글맞게’ 잘 한다. 시나리오에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찾아서라도 이해해야 연기가 된다는, ‘사전광’이라는 것 만으론 설명되지 않는 연기다. 아이 몸에 현명한 노파가 들어있다는 할리우드의 소문에 동의하고 싶어진다.
‘맨 온 파이어’의 토니 스콧 감독이 “오디션을 요구하는 것은 결례”라고 했다거나, ‘숨바꼭질’의 포스터가 로버트 드 니로가 아니라 이 어린 소녀의 이미지로 채워진 걸 보면 더욱 그렇다.
소녀의 연기에서 아이 답지 않은 조숙함이 묻어난다. 다코타 패닝의 이미지는 한 팔에 인형을 안고 파랑새가 날아들 듯 두 팔을 뻗어 아빠의 품에 번쩍 안기는 그림이다. 예쁜 딸 역할이지만 들여다보면 거기서 한 발 더 나간다. 오히려 ‘엄마’다.
‘아이 엠 샘’에서 루시는 자신이 8살이 되자, 7살 지능에 머물러 있는 아빠를 의식해 퇴행현상을 보인다. “아빠가 못 읽으면 나도 못 읽어.” ‘맨 온 파이어’에선 경호원 크리시를 만나자마자 피티는 알아본다. “아저씨는 슬픈 곰이야.” 그리고 먼저 사랑하기 시작한다. 어른보다 더 어른스럽다. ‘숨바꼭질’의 마음이 병든 아이 에밀리는 알고 보면 안간힘을 다해 아빠를 보호하려 한다. ‘우주전쟁’에서도 외계인의 공습이 시작되자 “오빠는 괜찮겠죠? 아빠, 괜찮아요?”라고 먼저 챙기는 것도 이 소녀다.
어제 개봉된 영화 ‘드리머’(Dreamer)는 이런 다코타 패닝에 의한, 다코타 패닝을 위한, 다코타 패닝의 영화다.
동물과 인간의 우정을 다룬 영화는 한계가 있다. 동물과 인간, 특히 어린이와 동물 간의 우정을 다룬 영화라면 그 동물이 무엇이고, 어느 쪽이 먼저 마음을 여느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결말까지의 스토리는 다 나와 있다. 명마 소냐도르와 열한 살 소녀의 우정을 다룬 이 영화 역시 실화에 근거했다고는 하나 스토리만으로는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로 그런 상투성을 훌쩍 넘어선다.
중심에 다코타 패닝이 있다. 말에게 ‘하드’를 먹인 후 남은 나무 막대를 땅에 꽂는 천진함이나, 아라비아 왕자를 설득해 경주대회 출전비를 따내는 명민함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말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내기 위해 못 먹는 커피를 타 먹는 장면에선 안쓰럽고, 수표를 내밀며 말을 팔라고 하는 악당에게 “당신 말은 우리 말의 엉덩이를 계속 보고 달릴 것”이라고 쏘아붙이는 기지에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두뚝뚝하지만 딸의 꿈을 아끼는 부정을 섬세하게 묘사한 커트 러셀, 할아버지역의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의 관록이 기막힌 하모니를 이룬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섹시 이미지를 잠시 접은 엘리자베스 슈의 인자한 어머니 연기도 쏠쏠한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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