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살면서 어떤 상황에서든 때론 이익을 받고, 때론 불이익을 감수하는 아픔을 경험한다. 그것이 차별이라 깨닫기도 전에 비하되거나 배제되는 느낌을 받고 기분이 몹시 불쾌했던 기억들을 하나, 둘 정도는 가지고 있을 것이다. 차별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피해를 준 경우는 없었을까?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담임선생님께서 같은 반이었던 한 친구를 불러놓고 배치고사 성적결과에 따라 반장과 부반장을 선출하는데, 나는 6남매 막내여서 리더십이 부족할 듯하고, 그 친구는 4남매 차녀이니 리더십이 있을 거라며 나보고는 부반장을 하고 그 친구는 반장을 하라고 하셨다. 6남매 막내지만 ‘막내 같다’는 소리를 한 번도 들어본 적 없고, 학급임원, 전교부회장 등의 경험이 있으므로 리더십이 없다고 볼 수 없다며 내가 1등으로 들어왔으니 반장을 하겠다고 당당히 요구해 그 자리를 맡았었다.
그로부터 한 달 쯤 지났을 무렵 부반장을 맡았던 그 친구네 집을 가보고서야 담임선생님이 그 친구를 반장으로 시키고자 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친구 집은 그 당시 수목이 우거진 4층집에 방마다 전화와 TV가 있었고,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멋진 장식품들이 즐비해 있었다. 그 때 나에게 행해졌던 부(富)로 인한 차별을 그냥 감당하고 벽을 뛰어넘지 못했었다면 그 결과가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옳은 것과 그른 것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나름의 판단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은 마음속에 묻어두지 않고 드러내게 된 것이 아마 그 때부터가 아닌가 싶다.
얼마 전 여성학 시간에 학생들과 차별을 내용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조별로 본인들이 차별을 받았거나 불평등한 대접을 받아서 속상했던 경험을 서로 나누게 했고, 차별에 이용된 요소를 찾아보도록 했다. 다른 사람의 경험을 들으며 나름의 아픔을 함께 공감하면서 성, 연령, 학력, 학벌, 돈, 키, 외모, 피부 등 정말 다양한 요소들을 뽑아냈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성차별로 인한 사례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에 놀라워했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는 사회적 규범과 문화다. 이러한 규범은 역할이 변화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과 남성에 대해 고정된 방식으로 생각하게 하는 습관을 갖게 한다. 이는 오랜 역사과정 속에서 여성과 남성으로 길러지면서 사회문화적 배경에 의해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지 못함에서 오는 결과이다. 이러한 고정관념 때문에 남성과 여성의 삶이 억압받고 있다. 불평등한 젠더문제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로 인식되어야 한다.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차별이 존재한다. 선입관, 편견을 가진 사람이 의도적으로 행하기도 하고, 때로는 해를 끼치려는 의도나 편견 없이 만들어지고 지속된다. ‘아름다운 공존’을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차별의 벽’들을 이제 함께 온몸으로 깨뜨리며 가야 하지 않을까?
‘하인스 워드’가 태어나면서는 축복받지 못했으나, 성공이란 외투를 두르고 온갖 관심어린 시선과 찬사를 받으며 당당히 방문했던 고국을 떠났다. “정이 있고 아름다운 나라지만, 어두운 그늘이 동시에 존재한다”던 그의 고별 기자회견을 그냥 넘겨서는 안 될 것이다. 혼혈인들에 대한 순간의 관심만으로 차별의 숱한 세월을 견뎌온 그들의 아픔이 절대로 치유될 수 없다. 정치권에서는 법제정을 거론하고 있지만, 법제정을 서두르는 것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인식의 전환이 함께 할 때 의미가 있다. ‘하인스 워드’의 방한이 일시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1회성 행사가 아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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