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수백여 인종들 중에서 자기 고유의 언어와 문자를 사용하고 문화 강국의 기본요소를 갖추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라는 것은 여간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우리 경찰관들에게 하루에 꼭 한 번씩 우리의 좋은 언어를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습관을 들이자고 제안한 바 있다. 베스트셀러를 읽는 습관을 갖도록 하거나 문학, 역사, 철학 서적을 가까이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본다. 나는 우리 직원들에게 여기저기 널려 있는 일간신문 한 가지를 꼭 정독하는 일을 적극 권유하고 있다. 신문은 그 자체가 뉴스와 정보와 언어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 속에 품고 있을 만한 가치가 있는 말들이 수없이 많이 있다.
신문은 매일매일 좋은 언어들이 오고가는 공간이 아닌가. 신문의 기능이 재고되고 있는 디지털시대에 무슨 고루한 이야기냐고 책망받을 수도 있을 것이나, 디지털 정보의 기능과 오프라인 자료의 기능간에는 여전히 독자적인 영역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우리의 신문지면 속에는 동서고금의 어느 공간에 뒤지지 않는 좋은 언어들이 가득하다. ‘산소같은 여자’, ‘따뜻한 카리스마’ 등 책을 읽고 얻은 말들이 아니라 신문 광고를 보고 기억하는 좋은 말들이다. 이렇게 품고 있는 좋은 언어는 쓸 때, 뱉을 때, 토로할 때, 설득할 때 잘 가려서 사용해야 한다.
나는 열심히 탐색한 좋은 언어들, 품고 있는 언어들을 잘못 풀었다가 경을 친 일이 있다. 직책상 누구를 설득하는 일이 많았던 나는 상사를 설득할 때 ‘첫째 덕담을 하고(아첨이 아닌), 둘째 상사의 관심사항, 셋째 나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그런데 이런 문제에 대해 이렇게 조치해 주셨으면 합니다’라는 수순을 밟는 것이 전형적인 수법(?)이었고 대개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한다.
몇 년전 모지방청장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덕담→상사 관심사항→요망사항’순으로 말이 잘 넘어가는데 그 청장님이 갑자기 나에게 ‘야, 요즘 내 여론이 어떠냐 솔직히 한번 말해 줄래’라고 너무 진지한 표정으로 질문을 하길래 내가 얼핏 뱉은 말이 ‘아주 개혁적인 아이디어가 넘친다고 합니다. 그런데 좀 쇼가 심하다는 얘기는 있습니다.’ 말을 하고 나니 순간 아차 싶다 했는데 그 분이 즉각 ‘누가 그러더냐, 한 사람만 일러 줄래, 경무관급이지, 00대 출신 놈들이냐, 한 놈만 얘기해 줘라’라면서 정색을 하고 화를 내는 것이었다.
여간 낭패스럽지 않았다. 정신을 가다듬고 ‘모지방청장은 어느 중앙관서장 못지 않게 국가 운영에 중요한 보직인 것 같습니다.그런데 중앙관서장이 뭐 실제로 일을 합니까. 중앙관서장은 무대 위에서 한마당 연기하는 것 아닙니까. 청장님이 쇼하는 것은 당연한 역할이 아니겠습니까.’ 그 지방청장님의 분노는 조금씩 진정되고 있었다.
나는 상사의 분노를 보면서 할 수 있는 말보다 품어야 할 말들이 훨씬 많음을 절감하였다. 요즘 내 자신이 일을 좀 하려고 하다 보니 덤벼드는 인상을 주었거나, 말을 가볍게 하는 느낌을 준 모양이다. 어느 과장이 ‘청장님, 직원들과 대화할 때 즉답은 좀 피하면서 희망의 메시지만 간접적으로 말씀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충고를 해주었다. 품어야 할 말들을 잠시 내가 잊은 듯했다.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말’의 홍수가 이루어지고 있다. 지방정치판에서 누가 이 시대의 진정한 지역정치가(Statesman)이냐, 아니면 정객(Politician)이냐는 주민들이 표로 심판하겠지만 해야할 말과 품어야 할 말의 가치판단이 매우 절실한 계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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