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 나무는 저절로 생겨 자란 것이 아니다. 50~60년대의 황폐화된 민둥산을 보지 못하였고, 또한 7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었던 범국가적이고 대대적인 치산녹화사업의 추진과정을 겪지 않은 젊은 세대로서는 당연한 생각인지도 모른다.
우리 산림은 광복과 6·25 전란 등 사회적 혼란기를 거치면서 최대 황폐기를 맞았다. 보이는 산이란 산은 거의 대부분이 나무 한그루 없는 벌거숭이 민둥산으로 매년 홍수피해와 가뭄이 반복되었을 뿐만 아니라 땔감의 대부분을 임산연료에 의존하던 당시로서는 배고픈 생활에서 벗어나고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산림녹화 문제가 임업문제가 아닌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 되었다.
따라서 60년대 초부터 사방사업 등 나무심기 작업을 추진하게 되었고 1973년부터는 치산녹화사업 등을 본격 추진하여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짧은 기간 내 국토녹화를 달성한 국가로 평가받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결과는 우리 부모님들의 피와 땀이 어린 노력의 결과란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짧은 기간 내 국토녹화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당시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현재의 기준과 잣대로 보아 일각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아까시나무, 오리나무, 리기다소나무 등 아무나무나 심었기 때문에 쓸모없는 산림으로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공감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과거나 지금이나 토양의 비옥정도와 현지여건에 따라 그 지역여건에 맞는 나무를 심는 것이 조림의 성공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 당시처럼 황폐한 산림환경에서 심은 나무가 쉽게 활착이 되고, 산림토양을 비옥하게 할 수 있는 나무는 치산녹화기에 심었던 수종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현실여건은 다르다. 현재 우리산림은 성장이 왕성한 30년생 내외의 청년기 나무가 62%를 차지하고 있어 지속적으로 가꾸어야할 시기에 있다. 따라서 지금이야 말로 현재 있는 나무가 더욱 쓸모 있는 나무로 잘 자랄 수 있도록 가꾸어 나가면서 이제 비옥해진 토양위에 보다 더 나은 수종으로 갱신조림을 함으로써 크고 작은 나무가 함께 어우러진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산림경영을 할 수 있는 숲으로 조성해나갈 필요가 있다.
숲을 모태로 발전한 메소포타미아 문명 등 세계4대문명이 숲을 파괴하면서 종말을 맞은 것처럼 ‘숲을 지키지 못하면 문명도 옳게 지탱할 수 없다’는 거창한 진리를 논하지 않더라도 숲이 제공하는 경제적, 공익적, 사회적, 문화적 기능이 후세까지 지속적으로 발휘 될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70년대 부모님들이 산림녹화를 위해 노력했던 이유와 가치를 되새겨 보면서 나무를 심고 가꾸며, 산불 등 재난으로부터 숲을 보호하는 4월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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