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처럼 쪼르르 쪼르르 내 뒤를 쫓아다니며 조잘대는 아이들.
“선생님, 이게 달래지요?”“선생님 달래는 뿌리에 조그만 양파 같은 게 달린 거지요?”
식물학자가 되겠다는 보연이와 정인이 사이에 달래 진위 논쟁이 벌어졌다.
“냄새를 맡아 봐. 아까 책에서 배울 때 달래는 알싸한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고 했잖아.” 나는 짐짓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정인이가 풀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는다. 그 옆에서 보연이도 코를 발씬거린다.‘아휴, 예쁜 것들….’ 나도 모르게 자꾸 웃음이 난다.
오늘 공부는 ‘봄나물로 비빔밥 해 먹기’다. 학교 둘레에서 뜯을 만한 나물이 달래와 냉이 밖에 없어서 집에서 각자 나물을 한가지씩만 가져오자고 했다. 어머니들이 특별히 마련해 준 양푼 다섯개에 급식실 밥을 받아 넣었다. 냉이와 달래를 씻느라 손이 발갛게 되었던 아이들이 물이 뚝뚝 흐르는 나물을 집어넣었다.
“나물 가져온 사람은 한 줄로 서.” 비닐봉지에 혹은 반찬통에 담은 나물은 참으로 제각각이었다. 한 아이가 가져온 고사리를 다섯 모둠에게 골고루 올려놓고, 호박나물, 콩나물무침, 시금치나물, 무우생채, 그리고 오이무침과 도라지무침까지 그야말로 양푼이 넘칠 정도로 푸짐하다.
아이들이 가져온 제각각 다른 나물이 섞인 비빔밥을 교실 바닥에 철푸덕 앉아 먹으며 우리는 참 행복한 봄날을 보냈다. 친구 입에 들어갔던 숟가락이 내 숟가락과 부딪쳐도 아무런 탓도 하지 않으며 배를 퉁퉁 두드려 가며 봄나물 비빔밥을 해 먹었다.
봄나물을 비벼 먹고 양푼을 말간 물에 헹구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세상이 아름다운 건 모든 사람이 비빔밥에 들어가는 나물처럼 다 제각각이기 때문이라고. 만약 비빔밥에 한 가지 나물만 넣는다면 무슨 맛이 있을 거며, 세상이 다 똑같은 일을 하는 똑같은 사람만 산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 것인가?
그런데 우리는 학교에서 모든 아이들을 똑같이 기르려 한다. 다들 공부 잘하는 아이가 되라고 한다. 제각각의 맛을 가진 아이들이 제 몫으로 당당하게 어깨 펴는 걸 막는다. 교실 밖에선, 학교 밖에선 한여름 낮 소나기 맞고 살아나는 호박잎처럼 싱싱한 아이들이 학교, 교실에만 오면 숨을 죽이고 고개를 떨군다.
씀바귀는 쓴맛으로, 달래는 매콤하고 알싸한 맛으로, 냉이는 달큰한 맛으로 섞여 겨우내 잃어버린 입맛을 찾게 해주는 데 한 몫을 하지 않는가? 이제는 우리네 교실에서 씀바귀는 씀바귀대로, 냉이는 냉이 맛대로, 달래는 달래 고유의 향으로 공부하고 뛰어 놀게 하면 어떨까? 그래서 그 모든 맛과 향, 그리고 색들이 세상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만들어 가도록 옆에서 ‘잘한다, 넌 할 수 있어. 지금 그대로의 네가 멋져.’ 그러면서 추임새를 흥겹게 넣어주는 선생이 되면 어떨까? 봄볕 내리쬐는 산골학교 교정에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