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에세이] 왜 함께 사냐고 물으면 웃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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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에세이] 왜 함께 사냐고 물으면 웃을 수가 없다.

  • 승인 2006-04-04 00:00
  • 권선필(목원대 행정학과 교수)권선필(목원대 행정학과 교수)
‘왜 사냐고 물으면 그저 웃지요’라는 시구가 있다.
김상용이라는 시인이 쓴 ‘남으로 창을 내겠소’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남쪽으로 창을 내고 무지렁이처럼 자연과 농사를 벗삼아 사는 사람이 삶에 대해 웃음 이상의 무슨 답이 필요하냐는 되물음이다. 한술 더 떠 이 시인은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라고 노래한다. 우리는 이 노래를 들으며 여유를 가지고 웃음으로 넘기는 자연을 친구 삼은 삶을 동경한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삶은 웃음으로 삶의 질문을 넘겨 버릴 수 없는 현실 속에 살고 있다. 제 맘대로 남(南)으로 창을 낼 수 있는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며, 제 손으로 농사지은 것으로 먹고 또 마시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심지어는 농사를 짓는 사람조차 제 손으로 짓지 않은 것을 먹는 것이 더 많다. 먹고 마시는 것은 물론 전기며 자동차에 텔레비전까지 남들 손을 거쳐오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아니, 오히려 제 손으로 만들고 충족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기인 취급을 받으며 TV 에 종종 소개되기도 한다.
시인은 ‘구름이 꼬인다 갈리 있소’라고 소박하게 노래하고 있건만, 오늘날 세상 살아가는 것은 뒤엉켜 풀 수 없는 실타래처럼 천 갈래 만 갈래로 꼬여있는 것이 현실이다.

식당에서 먹는 밥 한 그릇, 국 한 대접, 나물 한움큼이 지구상 어느 구석 어느 사람의 손길을 거쳐서 식탁 위에 올려졌는지 먹는 나 조차 알지 못하고 먹는 것이다. 우리 땅에서 난 양념이나 나물이 누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을 모르는 것은 물론이고 외국에서 난 것이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음식도 머나먼 이국 땅에서 생전 생각도 못한 방법으로 누군가에 의해서 재배되고 가공되어 내게 온 것이다.

중국산 고추, 태국산 조기, 칠레산 포도, 스페인산 후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온 소고기…. 생각하면 스스로 깜짝 놀랄 만큼 우리 삶이 세계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는 우리 음식생활의 외국산 음식물들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오히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종류의 음식들이 있음에 놀라기도 한다. 이제 몇 년 동안 먹어서 내 피와 살로 변하여 내 몸의 일부가 되어있건만 그저 먹기 위해 먹었을 뿐이다.

내가 먹을 수 있도록 만든 저 먼 바다 건너의 누군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던 것이다. 하기는 남의 나라 사람은 그만두고 당장 그 물건을 옮겨 식탁으로 가져다주는 우리 이웃에 대해서도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없다.

‘내가 타고 다니는 차가 어느 회사가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누가 누구와 함께 어떻게 일하면서 만들어졌을까?’라는 질문을 할 때 사람에 대한 관심이 생기는 것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무슨 캐슬이니 팰리스니 하는 브랜드나 건설회사에 관련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이름을 실제 생각해 낸 사람은 누구이고 또 널리 알리고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실제 그 집을 짓고 있는 현장의 사람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일까라는 질문을 해보자.

오늘날 우리는 왜 외로운가? 함께 사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내가 현재 사는 삶을 지탱해 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현재 우리의 있는 모습을 틀지어 가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외로운 것이다. 그저 사람은 없는 껍데기에 불과한 회사이름이나 상표와 제품이름 속에 사람이 가려져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이나 신문 속에서도 인형이나 이미지 명함 속 이름에 불과한 가짜 사람들만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 사람을 만나고 싶다. 왜 사냐고 하면 웃는 그 사람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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