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어떤 분의 40년 공직생활을 매듭짓는 명예퇴임식 이임사 중 첫 마디가 인상깊었다. 이임 인사말은,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한 윗분과 동료들에게 고맙다”는 말부터 꺼내는 것이 통상적이고 예의로 여겼으나, 그 분은 아내와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먼저 표했다.
집에서보다 직장에서 지낸 시간이 더 길었고, 가족보다 동료들과 함께 일에 묻혀 휴일과 밤낮을 잊은 채 외길 인생의 무대였던 직장을 떠나는 그 순간에 떠오를 사연이 적지 않았을 텐데 ‘아내와 가족’을 먼저 떠올린 것은 가족들에 대한 아쉬움이 그 무엇보다도 앞섰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가정’과 ‘직장’이라는 두개의 둥지를 가지고 있다. 인생에서 단란한 가정, 보람을 이룰 수 있으려면 직장이라는 두개의 수레바퀴가 안전하고 균형을 이루도록 하여야 한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러하겠지만 아마 그 분도 남편의 자리, 아버지의 역할보다는 직장 일을 먼저 생각하면서, 가정 일은 가족들이 감당하도록 한 데 대한 미안함이 늘 가슴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퇴임식에서나마 가족을 직장 앞에 두어야겠다는 생각이었을 게다.
이임식이 끝날 무렵, 아들 내외가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라며 꽃다발을 안겨드리고 서로 얼싸안는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그 잔잔한 감동이 아직도 메아리가 되어 남아있다. 아울러 네 엄마와 너희들의 얼굴이 오버랩 되면서, 내가 퇴직할 때 무슨 말을 하여야 할는지 또 너는 내게 무슨 말을 할까 떠 올려 보았다. 이제 직장이라는 둥지를 떠나, 새 길을 가는 그 분에게 부디 가정의 아늑함, 가족의 정을 듬뿍 느끼면서 여경(餘慶)이 함께 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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