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형체도 없이 사라지게 하는 힘은 우리가 여러 군데서 확인할 수 있다. 산을 송두리째 잘라내는 일은 눈에 잘 뜨이고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곧 발각(?)이 된다. 산지가 60%가 넘는 준 산악국가에서 산을 깨서 석재를 만드는 일이나 산의 능선을 어느 날 갑자기 털어내고 도로를 만드는 일은 이제 새로울 게 없다. 남북간 도로에 이어 동서간 도로건설이 활성화되면서 어디를 가도 흔히 만나는 풍경이다.
그러나 강을 옮긴다면? 강도 그렇게 금방 드러나고 그래서 정서적 저항에 부딪치게 될까? 드러난 허연 속살을 보며 시민들이 분노하거나 아파할 수 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산을 옮기는 것만큼 강은 사람들의 시야를 붙잡지도 정서적인 반감을 초래하지도 않을 것이다. 강을 바꾸는 일은 쉽게 눈에 드러나지 않으며 그만큼 관심을 갖는 사람이 적은 탓이다.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 농촌지역의 강이라면 더욱 그렇다.
진잠천이 바로 이 문제에 직면해 있다. 갑천의 지류인 진잠천은 서남부생활권 개발예정지 1단계 사업구간에 포함돼 있다. 토지공사와 주택공사, 대전도시개발공사가 공동 참여하여 개발하게 될 지역을 관통하여 흐르는 아름다운 자연하천이 진잠천이다. 농경지 한가운데를 유유히 흐르는 사행천을 도로개발계획과 토지이용효율을 높이려는 얄팍한 상술에 따라 하천선형을 개발측이 원하는 대로 새로 만들려 진잠천, 화산천 하천정비사업을 추진 중이다.
말은 생태하천을 조성한다고 한다. 선형은 원하는 대로 고쳐놓고 제방 내부의 하상은 생태하천으로 만들면 그게 생태하천인가? 산을 옮기고 강을 들어 올려서 얻는 것은 무엇인가? 지극한 정성으로 상대방을 감동시키는 민본행정도 아니고 땅을 밀어내서 집을 지어 파는 공기업들의 이윤이다. 시민들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물며 하천과 그 안에 사는 생물들이야 관심대상이 아니다. 자리를 옮기면 다시 깃드는 것이 생물이라고 너무나 쉽게 무시해버린다.
대전시와 토지공사가 노은지구를 개발하면서 반석천의 하천선형을 변경했다. 당초 존재했던 저수지를 메워 아파트를 지었다. 저류지도 없어 지난 여름 홍수시에 반석천과 유성천 일부가 쓸려나갔다. 대덕테크노밸리에서도 같은 상황이 나타날 수 있음을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테크노밸리의 토지효율을 높인다는 이유로 관평천의 하천선형을 변경하였기 때문이다.
대전 최고의 주택지가 될 것이라고 자랑해온 대전시가 서남부권 개발에서 하천선형 변경이라는 구시대적 행정을 밀어붙이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하천의 생태기능과 치수를 위해 하천 내 구조물을 전혀 설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요즘의 추세다.
하물며 하천선형을 사람의 기준으로 그것도 이윤의 기준으로 변경한다는 것은 생태적으로나 정서적으로도 타당하지 않다. 하천관리위원회에서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 사안이 일부 선형 변경이라는 주장으로 수용되어서는 안 된다. 하천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고 자연 그대로의 진잠천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성형수술하게 될 진잠천 하천정비계획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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