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퍼즐 맞추기식 구조 묘미 순간 방심하면 영화재미 놓쳐
‘시리아나’(Syriana)는 조각
한 무더기는 CIA요원 밥 번즈(조지 클루니). 중동지역 한 산유국의 왕자 나시르를 암살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임무에 실패한 그는 조직으로부터 버림받고, 누가 나시르의 죽음을 원했는지 추적하기 시작한다.
다른 무더기는 국제 에너지 분석가 브라이언 우드먼(맷 데이먼). 나시르 왕자가 연 파티에서 아들을 잃고 그 대가로 왕자의 경제 자문이 된 그의 일상이 담겨 있다. 또 다른 하나는 변호사 베넷 할리데이(제프리 라이트). 나시르에게 유전채굴권을 빼앗긴 석유기업 코넥스의 합병과정에 숨은 의혹을 조사한다.
마지막으로 파키스탄 청년 와심 칸(와자르 무니즈). 코넥스에서 일하다 합병과정에서 해고된 그는 이슬람학교에 들어가 테러리스트가 된다.
이 네 인물을 잇는 유일한 고리는 석유 뿐. 이 막막한 힌트를 가지고 세계 곳곳에 흩어진, 한 번도 얼굴을 대면하지 않았을 인물들의 조각을 맞춰 가는 건 머리가 딱딱 아프다. 시작한지 한 시간이 넘도록 그림 하나 드러내지 않는 영화의 안내도 불친절하다. 그러나 마지막 퍼즐조각이 놓이고 그림이 완성되는 순간, “악!” 소리 난다. 그때쯤이면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고, 자신의 걸작 리스트에 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세계에서 가장 첨예하고 또 저열한 전쟁이 벌어지는 가상의, 그러나 개연성 있는 현장을 무대로 석유를 둘러싼 미국의 정치적 음모가 고개를 내민다.
조직적인 마약 커넥션을 해부한 영화 ‘트래픽’의 각본을 썼던 스티븐 개건의 감독 데뷔작. ‘시리아나’의 각본도 그가 직접 썼다. ‘세상의 모든 일은 모종의 끈으로 연결돼 있다’는 개건의 세계관은 이 영화에서도 그대로다.
실제 중동에서 활약했던 전직 CIA요원 로버트 베이어의 회고록 ‘악마는 없다’가 원작. 특정 인물이나 입장에 포커스를 두지 않고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를 치밀하고 현실감 넘치게 그려낸다.
개건 감독은 ‘트래픽’의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같은 면도날 편집 솜씨는 없지만 상당히 안정된 캐릭터 중심의 연출력을 보여준다. 네 인물의 각각 다른 이야기를 조금씩 좁혀 가 하나로 엮어내는 솜씨는 탁월하다.
다중의 플롯이 하나의 테마로 모아지는 과정은 눈부시고, ‘대통령의 음모’‘도청’류의 60∼70년대 정치 스릴러를 보는 듯한 밀도와 긴박감은 단연 압권이다.
조지 클루니, 맷 데이먼 같은 쟁쟁한 스타들이 출연하지만 주인공이라고 할 만한 인물은 없다. 몸집을 불리고 자살 충동을 느꼈다고 고백할 만큼 역할에 몰입한 클루니조차 아카데미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았을 뿐이다. 할리우드 배우뿐 아니라 전 세계 12개국에서 캐스팅한 다국적 배우들과 보조출연자들의 연기도 좋다.
어느 한 부분이라도 이야기를 놓친다면 영화의 재미를 놓칠 수 있는 만큼 집중해서 봐야 하는 영화다.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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