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달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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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을 찾아서

  • 승인 2006-03-30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건달이 늘어난다 한다. 건달(乾達)은 쉽게 무위도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힘들이지 않고 살자니 허풍과 속임수가 그들의 필수 덕목일 수밖에 없다. 우리말의 '건달'이라는 말은 간다르바(Gandarva), 음역으로는 건달바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원래는 향신(香紳), 심향(尋香)으로 반신반인의 정령이요, 긴나라(緊那羅)와 같이 제석천(帝釋天)을 모시는 음악 담당 천신(天神)을 가리킨다. 허공에 사는 천계의 음악사라는 기막힌 직업을 가졌다.

또한 늘 여성을 사랑하며 하늘의 무희 아프사라스의 서방님이기도 하니 이렇게 부러울 데가 없다. 베다 성전에선 술의 신 '소마'의 수호자, 불교에선 천룡팔부(天龍八部)의 하나로 음악을 담당한 신을 가리킨다. 그게 팔자 좋게 무위도식하는 사람으로 돌변한 것은 순전히 뜻이 와전된 탓이다.

그 유명한 중국식 건달로는 '유맹'이 있다. 토착하면서 일정한 직업에 종사하지 않고 사회 이면에서 비합법적 수단으로 생활하는 자를 일컫는다. 토착 건달쯤으로 보면 되겠다. 더 넓게 봐서 건달기 있는 사회계층, 즉 태감(太監)·한인(閑人)·청객(請客), 그리고 건달을 뒤에서 봐주는 관청 서리와 준관료에 이르기까지― 아주 심하게는 역대 황제들까지 건달에 포함된다.

이렇듯 내력이 깊은 만큼 시대에 따라 부름말도 많았다. 선진 시기의 한민(閒民), 진한의 여항소년(閭巷少年), 위진남북조의 무뢰소년, 송대의 송귀(訟鬼)·염라·부랑인, 원대의 호민(豪民), 명대의 일민(逸民)·청수(靑水)가 이것이다. 선진 시대에는 도시와 상공업 발달로 농업생산에서 이탈한 사람들이 늘면서, 춘추말 전국 초기에는 정치·사회적 혼란을 틈타 건달이 늘어났다. 어느 시대엔 자연 재해나 잘못된 권력 행사로 말미암은 건달도 많았다.

한 고조 유방과 그를 둘러싼 번쾌, 삼국시대의 유비와 조조, 당나라를 건국한 이연처럼 생산적인 일에 힘쓰지 않는 부류들을 건달에 넣기도 한다. 부친에게 반항적이고 무협적 인간형을 존경하던 모택동도 기준에 따라서는 전형적인 건달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건달, 깡패'라는 의미로 'gang, gangster'를 많이 사용하는데, 이 단어는 '조직'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우리가 말하는 '조폭(조직폭력)'과 유사한 데가 있다.

그런데 뭐니뭐니 해도 원래 조선 토종 건달이 진짜 건달이었다. 일본 건달인 야쿠자나 고로쓰키의 폭력을 닮기 전까진 그랬었다. 싸움패라는 뜻의 '겐카도리'라는 일본식 한국말은 뒤에 '가다'로 변했다. 이는 야쿠자 두목인 '아야가다'에서 딴 것인데, 우리가 '어깨'라고 하는 것은 '가다'의 뜻 때문이다.

지금은 도시적 유맹들이 많아졌다. 어젯밤에나 오늘 아침에 여러분들도 만났을지 모른다. 골프장이나 초상집만 가도 별의별 건달이 다 있다. 관공서 부근의 브로커, 일부 정상배, 남에 빌붙어 무위도식하는 무리들은 현대적 의미의 건달에 속한다. 가만히 보자. 저 사람, 혹시 내가 건달이 아닌지, 건달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건달기'가 있지는 않은가를.

모 인사가 대전에서 특정 정당에 대해 "날건달들이 모인" 정당이라고 발언했다 한다. 말한 진의가 무엇이건 '날-'이라는 접두사는 명사 앞에 붙어 '익지 않았거나 마르지 않았거나 가공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면 그 뜻은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다시 미국의 경우를 보면 '날건달, 양아치'라는 표현을 쓸 때에는 그냥 건달과는 구분해 'scamp'라는 단어를 쓴다. 선거의 계절이 다가왔다. 그 밥에 그 나물인 것 같아도, 자세히 훑어보면 갖가지 신화를 갖고 있는 고대 인도의 정령들만큼이나 다양한 면면들이 보인다. 유권자들은 최소한 누가 건달인지, 누가 날건달인지 정도는 가려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걸 가려내는 데 이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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