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시평] 지방 정치에 매화는 언제쯤 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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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시평] 지방 정치에 매화는 언제쯤 필까

  • 승인 2006-03-29 00:00
  • 안순택 논설위원안순택 논설위원
▲안순택 논설위원
▲안순택 논설위원
남도 꽃소식이 반갑다. 섬진강 매화축제가 한창이란 소식인데, 텔레비전에 비친 그림이긴 해도 백매(白梅) 홍매(紅梅)의 자태가 곱다. 구례에선 산수유축제도 열렸다. 봄이 와야 꽃피는 게 아니라 꽃이 피면 봄이다. 섬진강 맑은 물은 지리산 8경의 하나거니와 눈부신 매화꽃, 매화향으로 봄을 노래하는 정경이 눈에 선하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자꾸 성에 가신다. 우리 토종 매화가 보고 싶다. 앞뒤 꽉꽉 틀어막고 힘자랑만 하는 이 하수상한 시절에, 매화 앞에 서면 숨통이 좀 트일까. ‘설중매(雪中梅)’를 되새겨보는 의미도 있을 거다. 10만 그루의 나무가 피워 올린 꽃, 2000개가 넘는 장독대, 홍쌍리 명장의 인간승리가 숨쉬는 청매실농원에 감동이 왜 없으랴만, 토종 매화가 주는 은은한 아정(雅情)과 고취(高趣)의 감동은 격이 다르다.

우리 전통의 탐매(探梅)는 북적거리는 소란과 거리가 멀다. 옛사람들은 매화에 네 가지 귀한 것이 있다 하여 관상의 기준으로 삼았다. 첫째가 함부로 번성하지 않는 희소함, 홀로 고고한 고결함이다. 둘째는 어린 나무가 아니라 늙은 가지이고, 다음이 살찌지 않고 마른 모양이다. 간난을 이겨내고 향기로운 꽃을 피워내는 것, 그 강인함을 봤다. 활짝 핀 꽃이 아니라 갓 피어날 꽃봉오리가 그 다음이다.

산청군 ‘예담전통민속마을’에 가면 이같은 ‘선비매화’를 만날 수 있다. 이름이 ‘원정공 매화’인데, 고려말 원정공 하집이 심은 나무다. 그가 “집 양지바른 곳에 일찍 심은 매화 한 그루, 찬 겨울 꽃망울 날 위해 열었네, 밝은 창에 글 읽으며 향 피우고 앉았으니, 한 점 티끌도 일지 않네”라고 읊은 그 나무다. 워낙 나이든 고목이어서 한두 가지에서 꽃을 피운다는데 몇 번을 찾아갔지만 인연이 닿지 않아 만나지 못했다.

원정공 매화와 가까운 곳에 ‘정당매(政堂梅)’와 ‘남명매(南冥梅)’가 있다. 빈 절터에 서있는 정당매는 고려 말 강희백이 이 절에서 공부할 때 심었다는 나이가 640살이 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 매화다. 골짜기가 깊은 탓에 늦게 꽃이 피는데, 게으른 나그네도 향기를 나누는 고마운 나무다. 산천재의 남명매는 백매의 정수다. 매화를 살결 맑은 여인에 비유해 ‘빙기옥골(氷肌玉骨)’이라 하는데, 그 형용에 딱 어울리는 꽃이다.

탈(脫) 세간(世間)의 아취다. 그 지조와 절개를 세속의 마음으로 보고 있자면 부끄럽다. 오히려 잠시나마 잊고 싶었던 소음이 귓가에 살아날 뿐.

정치인들의 귀에 매화꽃 소식이 들리는지 모르겠다. 여나 야나 어디라 가릴 것 없이 국민과 민생을 위해 지방선거에서 이겨야 한다고 하지만 그 아우성은 매화 한 송이가 주는 감동의 한 자락도 따르지 못한다. 오로지 승리를 위해 장관을 내몰고 지방인재를 키우긴커녕 내 사람 심기에 골몰하고 있으니 선거가 끝난 뒤 지방은 어찌돼도 괜찮다는 건가.

선비가 그립다. 선비들은 사랑방에 매화와 더불어 효, 제, 충, 신, 예, 의, 염, 치를 쓴 문자도(文字圖)를 펼쳐 놓고 마음을 다스리는 거울로 삼았다.

이 가운데 ‘염(廉)’자 글자엔 게가 그려져 있다. 게는 세상에 나설 때와 물러날 때를 잘 알아 처신한다는 출처지리(出處之理)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분할 줄 아는 거, 또 만약 이런 것들이 어긋날 경우, 부끄러워하며 반성할 줄 아는 거, 그게 선비의 도리다. 비록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할 줄 아는 염치 정도는 있어야 할 것이다.

지방 정치는 지방에 맡겨라. 큰물이 작은 물 보고 이리 가라 저리 가라하는 건 남우세스럽지 않나. 중앙이 칼자루를 쥐고 있는 한 지방은 여전히 한 겨울일 뿐이다. 지방 정치에서 매화는 언제 피는가. 희망의 계절은 아직도 먼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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