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순택 논설위원 |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자꾸 성에 가신다. 우리 토종 매화가 보고 싶다. 앞뒤 꽉꽉 틀어막고 힘자랑만 하는 이 하수상한 시절에, 매화 앞에 서면 숨통이 좀 트일까. ‘설중매(雪中梅)’를 되새겨보는 의미도 있을 거다. 10만 그루의 나무가 피워 올린 꽃, 2000개가 넘는 장독대, 홍쌍리 명장의 인간승리가 숨쉬는 청매실농원에 감동이 왜 없으랴만, 토종 매화가 주는 은은한 아정(雅情)과 고취(高趣)의 감동은 격이 다르다.
우리 전통의 탐매(探梅)는 북적거리는 소란과 거리가 멀다. 옛사람들은 매화에 네 가지 귀한 것이 있다 하여 관상의 기준으로 삼았다. 첫째가 함부로 번성하지 않는 희소함, 홀로 고고한 고결함이다. 둘째는 어린 나무가 아니라 늙은 가지이고, 다음이 살찌지 않고 마른 모양이다. 간난을 이겨내고 향기로운 꽃을 피워내는 것, 그 강인함을 봤다. 활짝 핀 꽃이 아니라 갓 피어날 꽃봉오리가 그 다음이다.
산청군 ‘예담전통민속마을’에 가면 이같은 ‘선비매화’를 만날 수 있다. 이름이 ‘원정공 매화’인데, 고려말 원정공 하집이 심은 나무다. 그가 “집 양지바른 곳에 일찍 심은 매화 한 그루, 찬 겨울 꽃망울 날 위해 열었네, 밝은 창에 글 읽으며 향 피우고 앉았으니, 한 점 티끌도 일지 않네”라고 읊은 그 나무다. 워낙 나이든 고목이어서 한두 가지에서 꽃을 피운다는데 몇 번을 찾아갔지만 인연이 닿지 않아 만나지 못했다.
원정공 매화와 가까운 곳에 ‘정당매(政堂梅)’와 ‘남명매(南冥梅)’가 있다. 빈 절터에 서있는 정당매는 고려 말 강희백이 이 절에서 공부할 때 심었다는 나이가 640살이 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 매화다. 골짜기가 깊은 탓에 늦게 꽃이 피는데, 게으른 나그네도 향기를 나누는 고마운 나무다. 산천재의 남명매는 백매의 정수다. 매화를 살결 맑은 여인에 비유해 ‘빙기옥골(氷肌玉骨)’이라 하는데, 그 형용에 딱 어울리는 꽃이다.
탈(脫) 세간(世間)의 아취다. 그 지조와 절개를 세속의 마음으로 보고 있자면 부끄럽다. 오히려 잠시나마 잊고 싶었던 소음이 귓가에 살아날 뿐.
정치인들의 귀에 매화꽃 소식이 들리는지 모르겠다. 여나 야나 어디라 가릴 것 없이 국민과 민생을 위해 지방선거에서 이겨야 한다고 하지만 그 아우성은 매화 한 송이가 주는 감동의 한 자락도 따르지 못한다. 오로지 승리를 위해 장관을 내몰고 지방인재를 키우긴커녕 내 사람 심기에 골몰하고 있으니 선거가 끝난 뒤 지방은 어찌돼도 괜찮다는 건가.
선비가 그립다. 선비들은 사랑방에 매화와 더불어 효, 제, 충, 신, 예, 의, 염, 치를 쓴 문자도(文字圖)를 펼쳐 놓고 마음을 다스리는 거울로 삼았다.
이 가운데 ‘염(廉)’자 글자엔 게가 그려져 있다. 게는 세상에 나설 때와 물러날 때를 잘 알아 처신한다는 출처지리(出處之理)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분할 줄 아는 거, 또 만약 이런 것들이 어긋날 경우, 부끄러워하며 반성할 줄 아는 거, 그게 선비의 도리다. 비록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할 줄 아는 염치 정도는 있어야 할 것이다.
지방 정치는 지방에 맡겨라. 큰물이 작은 물 보고 이리 가라 저리 가라하는 건 남우세스럽지 않나. 중앙이 칼자루를 쥐고 있는 한 지방은 여전히 한 겨울일 뿐이다. 지방 정치에서 매화는 언제 피는가. 희망의 계절은 아직도 먼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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