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집 앞 편의점에 들렀는데, 내 앞을 막아서는 훤칠한 남자 아이 때문에 깜짝 놀랐다. 눈가의 웃음이 유난히도 사랑스러웠던 하늘이. 4년 전 대전둔천초등학교에 근무하면서 6학년 담임을 하며 만났던 녀석이다. 태권도 대회에 나가 상을 휩쓸었기에 은근히 주먹이 세다고 소문이 나서 1년 내내 요 녀석에게서 감시(?)의 눈초리를 소홀히 할 수 없었는데, 여드름 불긋불긋한 어엿한 고등학생이 되어 있었다. 특기를 살려 고등학교도 태권도로 진학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어찌나 녀석이 대견스럽던지.
먹고 싶은 것을 고르라고 했더니 “에이, 선생님 월급 만원밖에 안 되잖아요”하며 웃어 보인다. 처음 발령을 받았을 때나 지금이나 아이들이 월급이 얼마냐고 물으면 “만원이야”라고 대답하는데, 그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느새 훌쩍 자라 선생님 주머니 걱정까지 해 주다니…. 하늘이와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오랜만에 만난 제자가 너무 반가워서, 그리고 그동안 만났던 제자들 얼굴이 하나 둘 떠올라 내내 행복했다.
요즘은 수업이 끝나고 분주하게 일을 하다가도 오후 4시만 되면 하던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자꾸 시계를 쳐다보게 된다. 작년 대전중원초등학교로 전근을 와서 만나 졸업시킨 우리 반 아이들이 매일 찾아오기 때문이다.
“선생님, 오늘 진단 평가 봤어요.” “학교 진도 따라가는 것이 힘들어요. 6학년 때가 그리워요.”
중학교에 입학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서인지 우리 교실은 아직도 작년 우리 반 아이들의 아지트다. 처음에는 ‘교복이 마음에 드네, 안 드네’로 시작했던 푸념이 이제는 슬슬 성적으로 시험으로 옮겨지는 것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아이들 마음의 부담감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서 함께 고민을 하기도 한다. 고학년을 맡으면 아이들에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한다.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랐던 내 경험, 국내외 여행지에서 보고 느꼈던 수많은 감흥과 느낌을 풀어내며 지금 살고 있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닫게 한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잎 싹’처럼, ‘연어’의 ‘은빛 물고기’처럼 내 손으로 지금 가꾸어 나가며 바꿀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 지를 매번 강조하면서 말이다.
처음 교사가 되었을 때에는 아이들이 한 가지를 이야기하면 열 가지를 알아듣기를 기대했었던 것 같다. 경력이 쌓이면서 이제는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봐줄 수 있는 여유와 넉넉함이 내게도 생기는 것을 보면 이제야 나도 진정한 교사가 되어 가나보다.
살다 보면 한 박자 천천히 숨을 고르고 쉬어가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힘을 내고 전력질주 해야 하는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아이들의 오늘은 전력질주를 해야 하는 때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잠깐씩은 우리 반에서 나와 함께 쉬어 가는 것도 괜찮으리라. 내 제자들이 뚜렷한 목적과 자기 확신으로 드넓은 세상 속으로 퀵, 퀵 질주하기를 바라며 오늘도 힘찬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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