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들 탄수화물 패션을 두르고 있는 단백질 모델을 당단백질(糖蛋白質)이라 부른다. 앞의 가상 패션쇼는 세포에서 만들어지는 당단백질의 다양성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당단백질은 대부분의 생물체에서 만들어지고 있으며 진화한 생명체일수록 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포도당 같은 간단한 단당류가 붙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당단백질은 5~20개 정도의 단당류가 정교한 규칙으로 결합되어 유전자, 단백질, 지질 등의 생체고분자 중에서 가장 복잡한 구조의 소당체를 함유한다. 이는 당생물학 발전이 타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은 원인이기도 하다.
왜 신은 이렇게 복잡하게 만드셨을까? 이제까지 밝혀진 당생물학 지식에 의하면 소당체는 크게 구조와 인식의 두 가지 역할을 한다. 하나는 단백질을 제대로 된 상태로 만드는 것으로, 잘못 만들어지면 소당체는 단백질에 다시 기회를 주고 정상으로 갈 수 있게 유도하나 반성의 기미가 안보이면 가차 없이 소각장으로 보낸다. 이런 과정이 원활하지 못할 때 몸은 질병이라는 비상상태로 돌입한다.
다른 하나는 단백질의 눈으로서 자기와 접촉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역할이다. 생명의 탄생이 시작되는 정자와 난자의 만남도 이들 소당체에 의해서 주선되고, 인간의 분류체계로 잘 알려진 혈액형도 소당체에 의해서 결정된다. 인체에서 만들어지는 단백질의 최소 반 이상이 당단백질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들 당단백질의 소당체는 매우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생명체 대사활동에 관여한다.
간단히 말해 소당체가 없으면 우리는 살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효소나 유전자 등이 주로 생체의 특정 기능을 온-오프(on-off)하는 스위치 역할을 수행한다고 하면 소당체는 방안을 점차 밝게 하거나 어둡게 하는 세밀한 조절기능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혹시 세밀한 조절을 위해서 정교한 구조가 필요한 건 아닐까?
그 해답을 기초과학지원연구원의 글라이코믹스팀에서는 찾고 있다. 단백질에 소당체 등의 탄수화물이 부가되는 반응을 당화(糖化)라고 하며 스트레스나 나이, 음식 등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아 같은 단백질이라도 다른 당화 패턴을 보인다. 질병이나 약물치료에 의해서도 당화는 변할 수 있으며 연구원에서는 이러한 변화의 조절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변화로 인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질량분석기나 자기공명장치 등 여러 종류의 첨단연구장비를 이용하여 소당체의 구조 결정을 하고 이에 근거하여 상호작용의 변화 등에 대한 실마리를 찾고 있다.
글라이코믹스는 당을 포함하고 있는 물질에 대한 연구 분야로서, 최근 MIT는 세상을 바꿀 10대 신기술의 하나로 글라이코믹스를 선정한 바 있다. 기존에 많이 연구되어 온 유전자나 단백질이 아닌 탄수화물에 관점을 가지기 때문에 생명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새로운 창을 열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으로도 연구자는 많지 않으며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기회는 많다고 할 수 있다.
기초과학지원연구원에서는 이 같은 중요성을 일찍이 파악하고 관련 연구를 진행하며 외부 연구자들에게 수준 높은 분석서비스와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후배들이 이 분야에 도전적으로 뛰어들어 정진할 수 있도록 현직에 있는 선배 연구자들의 많은 배려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많은 젊은이들이 달콤한 세상에서 살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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