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를 마시는 고려대 학생들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맥주와 소주로 점철되어 있는, 흔히 대학가 근처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술자리 모습들 뿐 이었다.
막걸리는 꽤 오래 전 농민들이 마시던 술일 뿐만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술이다. 현재 가장 많이 찾고 있는 소주와는 보편적인 시대의 공통점도 있지만 분명히 다른 문화적 코드로 작용한다. 농업국가였던 근세기 동안 농민의 삶과 애환을 담아왔던 지금의 상업성은 뛰어난 상술을 뒤로 숨긴 소주와는 커다란 차별을 고할 수 있다.
막걸리는 간도와 만주에 정착했던 조선인들의 문화적 상징이기도 했으며, 중국의 고량주와 일본의 정종과 더불어 우리를 대표하는 술로 대변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지금 막걸리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로 남아있는가. 박제되어진, 추상화된 의미로만 남아있는 것은 혹시 아닌가. 토속이라는 말, 장터의 정겨움을 나타내는 말, 전통이라는 단어로 포장하여 장사 속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막걸리는 농민, 농촌의 대표적인 술로 여겨져 왔던 지난 시간을 뒤로 한 채 굉장히 빠른 속도로 우리네 기억에서 잊혀져가고 있다.
우리나라 고유의 농주(農酒)였던 막걸리가 이제 농촌에서조차 맥주와 소주에 밀려나고 있다. 농업진흥청 농업과학기술원이 전국 88개 농촌지역 시·군의 1870 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농촌생활지표조사 결과에 따르면 농촌 주민들이 주로 마시는 술이 소주(73.3%)로 나타났으며, 막걸리(11.3%)는 맥주(12.8%)에조차 농주의 대표 주자 자리를 내준 것으로 조사됐다.
나라 전체로 본다면 막걸리는 더욱 미미하다. 재정경제부조사에 따르면 2002년도 기준 우리나라 술 소비는 성인 1인당 맥주 119병, 소주 79병, 위스키 1.4병을 기록했다. 여기에 막걸리는 축에도 끼지 못한다.
우리 시골 읍내의 막걸리 양조장이 없어진 것은 이미 오래되었다. 아침마다 길에 술통을 내어 놓던 풍경은 사라졌다. 아버님의 심부름으로 막걸리를 사기 위해 주전자를 들고 막걸리를 받아 넘치지 않기 위해 주전자 코를 신문지로 틀어막고 집으로 오다 목이 메여 슬쩍슬적 마시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기도 했던, 입가에 작은 웃음이 지어지는 추억으로 남아있는 그때 그 모습들이 너무나 머리 속에 선명하게 그려져 잊건만, 주위 어르신들도 이제는 막걸리보다 맥주를 더 찾는다.
내가 아쉬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막걸리 뿐 아니라 지금의 우리네 삶을 대변하는 소중함들이 하나하나 잊혀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놓치지 말아야 할 대한민국의 문화유산들이 개방과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파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항상은 아니다라고 할지라도 우리 것이 때로는 가장 소중한 것이 될 수 있음을 몸으로 느끼는 날이 과연 언제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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