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들 맛깔나는 양념연기 톡톡 제인 오스틴의 원작소설 영화화
평생을 한적한 작은 마을에
영화 ‘오만과 편견’도 리지 베넷, 다시 말해 키이라 나이틀리의 리지 베넷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러브 액츄얼리’의 도회적 이미지를 벗고, 순박하면서도 자기 주관이 강한 시골 처녀로 변신한 나이틀리는, 소설 속 리지를 현실로 불러냈다는 찬사가 아깝지 않을 만큼 빛을 발한다. 할리우드 아카데미가 여우주연상 후보로 올린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그녀에게 상을 주지 않은 것은 ‘그들만의 축제’임을 드러낸 본보기라 할 것이다.
리지는 좋은 신랑감, 즉 돈 많은 남자에게 딸을 시집보내는 게 목표인 극성스런 어머니와 세상사에 무관심한 아버지가 둔 다섯 자매 중 둘째. 조용했던 런던 근교 시골마을은 부유한 신사 빙리와 그의 친구 다아시가 찾아오면서 들뜨기 시작한다. 무도회에서 다아시에게 시선을 준 리지는 어느 날 오만에 가까운 다아시의 말을 우연히 듣게 되고, 그에 대한 미움을 품게 된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 다아시는 리지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그가 언니의 사랑을 깼다고 오해한 리지는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조 라이트 감독은 이 영화가 첫 작품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매끈하게 뽑아냈다. 원작 소설이 주는 감흥과 수다스런 문체까지 고스란히 살려낸 솜씨는 놀랍다. 구석구석 헤집고 다니며 다양한 인물들의 복잡미묘한 관계를 섬세하게 포착하는 카메라로 제인 오스틴 못잖은 필력(?)을 보여준다. 소설에 꼼꼼하게 적힌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무도회를 통해 단박에 드러내는 솜씨는 단연 일품.
짧은 순간 속물근성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배우들의 연기 덕분이기도 하다. 매튜 맥파든은 원작보다도 설득력있는 다아시의 모습을 선보이고, 아버지 역의 도널드 서덜랜드, 남자들의 관심을 받고 싶지만 드러내지 못하는 키티 역의 캐리 멀리건 등 양념 구실을 톡톡히 해낸 조연들의 연기도 좋다.
이 오래된 소설이 지금도 감동을 주는 이유는 지금의 드라마보다도 더 현대적이기 때문이다. 두 주인공이 거리를 좁혀가는 연애과정은 일반적인 로맨스영화의 패턴과는 거리가 있다.
최근 만들어진 영화들조차 상대에게 자신을 맞춰가는 식으로 그려가지만, 여기서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동에 옮김으로써 상대방을 끌어들인다.
진흙과 자욱한 안개와 거친 비바람 속에서 혹은 계급차별과 인격모독이 난무하는 가운데서도 행복해지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의 소동을 담은 ‘오만과 편견’은 소박하고 사랑스럽다. 그리고 유쾌하다.
절대 사랑에 빠지지 않겠다고 생각한 누군가와 자신도 모르게 사랑에 빠졌던 사람, 사랑의 열병에 빠져 잠을 설치고 맘 아파했던 사람이라면 공감하며 빠져들 영화다.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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