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남대 낙조회 회원 이봉환씨(48)씨가 지난해 10월 태안군 남당리앞 바다에서 2시간만에 잡아올린 싱싱한 우럭을 들어보이고 있다. |
이쯤되면 느릿느릿한 사람은 현대 사회에서 대접받지 못할 법도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느림’을 추구하는 것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낚시, 바둑 등으로 느리면 느릴수록 결과와 그 성취감 또한 배가 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런 동호회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느림’을 추구하면서 저절로 ‘느림의 미학’이라는 나름대로의 철학까지 터득하게 됐다. 한남대 낚시 동아리인 ‘낙조회’ 회원들과 충남대 바둑 동아리 ‘기도 연구회’ 회원들을 만나 ‘느림의 미학’이 무엇인지 알아봤다. /편집자 주
민물. 바다낚시 불문 연 4회 출조
월척 낚기위한 기다림은 ‘큰기쁨’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낚시의 참 맛을 알 수 있습니다.”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의 낙조회는 한남대 교직원 가운데 낚시의 ‘손 맛’에 푹 빠져 있는 17명으로 구성돼 있다.
낙조회는 지난 2003년 3월 현 회장인 손호영(48·한남대 사무처)씨를 주축으로 만들어졌다.
낙조회는 일년에 정기적으로 4번 가량 회원들 모두 태안, 서산 등의 민물, 바다를 가리지 않고 낚시 모임을 떠난다.
한 번 떠나면 낚시를 하며 밤을 지새는 것이 부지기수다.
손 회장은 “낚시는 무한한 기다림의 연속으로 이는 곧 느림의 미학이다”며 낚시에 관한 자신의 철학을 이야기했다.
그는 “바다 한 가운데 좌대(수상가옥)에 앉아 낚싯대를 바다에 담그면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계속 기다린다”며 “이 순간에는 ‘오늘은 어느 녀석이 와서 걸릴까’하는 생각을 하며 물속을 상상한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좌대에 앉아 있을 때는 물 속 생각 말고 일상의 일은 까맣게 잊게 되는데 이것이 낚시의 묘미”라며 “보통 멋진 녀석(월척)을 기다리다 보면 2~3시간이 지나는 것은 순식간이다”고 전했다.
그는 낚시가 ‘느림의 미학’에 딱 들어맞는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때는 지난해 10월. 손씨는 동호회 전체 회원들과 태안군 남당리 낚시터로 밤낚시를 갔다. 계절이 깊은 가을인지라 제법 밤 기온이 싸늘하게 느껴졌다.
추위 속에서 손 회장과 동료들은 낚시대를 담근 물 속만 주시했다. 한 3시간쯤 흘렀을까, 이날 따라 유난히 잡히는 고기가 없어 철수하려고 할 때 쯤 손 회장 옆에 있던 동료 이봉환(48)씨에게서 ‘아…’라는 탄식이 들려왔다. 짧은 탄식만으로도 족히 대어가 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손씨는 “동료가 쥐고 있던 낚싯대가 심하게 휘어질 정도로 봐서 여간한 놈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고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낚시에 걸린 것은 길이 1m, 굵기 15㎝ 가량의 좀처럼 보기 드문 대형 갯장어였다.
손씨는 “고기가 워낙 커 당시 잡은 갯장어에 ‘아나콘다’라는 별명을 붙였다”며 “아나콘다로부터 낚시는 결코 서두르지 않고 기다려야한다는 값진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낙조회 총무 신형근(42)씨는 “모든 사람들이 빠름을 추구할 때 우리는 느림을 추구함으로써 기쁨을 얻는다”며 “끈기를 갖고 기다리는 자만이 월척을 낚을 수 있는 낚시는 그 자체가 느림의 미학”이라며 낚시 예찬론을 폈다.
한편 낙조회 회원들은 낚시를 하고 나면 주위의 쓰레기들을 종량제 봉투에 담아 대전으로 가져와서 버리는 등 환경보호 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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