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대 기도연구회장 이영준씨가 교내 동아리방에서 회원과 대국중 신중한 수읽기를 마치고 착수를 하고있다. |
대표적인 것이 낚시, 바둑 등으로 느리면 느릴수록 결과와 그 성취감 또한 배가 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런 동호회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느림’을 추구하면서 저절로 ‘느림의 미학’이라는 나름대로의 철학까지 터득하게 됐다. 한남대 낚시 동아리인 ‘낙조회’ 회원들과 충남대 바둑 동아리 ‘기도 연구회’ 회원들을 만나 ‘느림의 미학’이 무엇인지 알아봤다. /편집자 주
수담·손맛의 느긋함에 즐거움이 낚이네
총장기대회 개최 전국유명 동아리
느림의 정화 ‘수읽기’로 승부겨뤄
“흰 돌과 흑 돌로 빈 바둑판을 채워 가는 과정에서 느림의 미학을 배웁니다.”
충남대 바둑 동호회인 기도연구회(회장 이영준).
기도연구회는 이영준씨를 비롯해 30여명의 대학생들이 가입돼 있으며 지난 80년대 초부터 지난해를 제외하고 매년 ‘충남대 총장기 전국 바둑대회’를 개최할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바둑 동호회이다.
이곳 회원들은 수업이 없을 때나 방과 후 짬이 날 때마다 삼삼오오 동아리방에 모여서 바둑을 둘 정도로 바둑 마니아들이다. 회장 이영준(26·충남대 컴퓨터 전공)씨는 바둑에서 진정한 느림의 미학을 배울 수 있다고 큰 소리다.
인터넷에서 10초 바둑(다음 수를 두기까지의 제한시간이 10초인 바둑)이 보편화되는 등 바둑에도 스피드 시대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이 회장이 그렇게 큰 소리를 친 이유라도 있을까?
이 회장은 바둑의 느림의 미학을 상대방과 마주앉아 벌이는 ‘치열한 수 읽기’에서 기인한다고 전했다.
그는 “요즘은 바둑 한 판을 두는 시간이 대체로 짧아지고 있지만 제대로 된 바둑을 두려면 최소한 2시간은 투자해야 한다”며 “바둑문화가 잘 발달된 일본에서는 아직도 한 번 두는 데 3박 4일 가량 걸리는 10시간 바둑을 두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긴 대국에서는 서로 간 치열한 수읽기 과정이 승패를 결정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이 회장은 설명했다.
그는 “바둑의 묘미는 상대방이 한 수를 두고 난 뒤 깊은 수 읽기를 통해서 다음 수를 어디에 둘까 생각하는 데 있다”며 “이러한 기다림의 과정은 마치 세븐 포커에서 마지막 카드를 열어 볼 때의 느낌과 같은 짜릿한 맛이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어 “이 과정을 소홀히 넘기거나 너무 빠른 시간에 다음 수를 결정하면 악수를 두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따라서 누가 더 오랫동안 초읽기 과정에 심사숙고하느냐에 따라 바둑의 승패가 갈린다”고 덧붙였다.
결국 초읽기 과정이 느리면 느릴수록 훌륭한 바둑을 둘 확률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이 동호회 회원인 송영훈(24)씨는 “수읽기 과정은 상대방의 전략을 분석해 가면서 나의 전략을 짜는 고민의 연속과정이라 할 수 있다”며 “ 고민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과정이 일반사람들에게는 길게 느껴지지만 바둑 마니아들에게는 짧기만 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보통 바둑한 판을 두는 데는 적으면 100수, 많으면 300수 이상의 흰 돌과 흑 돌이 오고가야 한다”며 “결국 100번 이상의 길고 긴 수읽기 과정이 반복되면서 비로소 바둑의 느림의 미학이 완성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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