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 일상에 초록빛 여유 하나…

무채색 일상에 초록빛 여유 하나…

느림:

  • 승인 2006-03-24 00:00
  • 박기성 기자박기성 기자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앉아 휴식할 줄 모른다는 데서 비롯한다’라고 말한바 있습니다. 일상 생활에 쫓기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습니다. 이에 본보는 ‘느림의 미학’을 이번 주 별지의 테마로 선정했습니다.

봄 햇살 속에서 한가롭게 거니는 모습이며 건강한 먹거리 슬로 푸드의 이모저모, 요가 및 필라테스의 모든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언론인 김모씨(48)는
월드컵 축구와 관련해 자신만의 전설(?) 하나를 가슴에 간직하고 살아갑니다. 이 전설은 그가 참석한 어느 모임에서든 월드컵 이야기가 화두로 떠오를 때면 어김없이 되살아나 함께 자리한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곤 합니다.

그의 전설은 지난 2002년 한국에서 펼쳐진 월드컵 당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중학생인 딸 아이와 초등학생인 아들에게 월드컵을 보여주기 위해 그는 1년 전에 1등석 입장권 4장을 100만원에 예매했던 것 입니다.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서 펼쳐진 한국과 이탈리아의 8강전, 바로 그 경기 입장권이지요.

그런데 난데없이 그에게 달콤한 유혹의 손길이 뻗쳐온 것입니다. 그가 1등석 입장권 4장을 예매했다는 사실을 안 어느 기업 관계자가 그것을 구입하고자 전화를 걸어온 것입니다. 그 쪽에서 제시한 가격은 자그마치 1000만원. 본래의 입장권 예매액의 10배에 해당하는 액수에 그는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아이들에게 월드컵의 진수를 생생하게 보여줬으며 아이들과 함께 ‘대~한민국’을 목이 터져라 외쳤던 ‘2002 월드컵’의 전설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1000만원이라는 돈은 서민들에게 결코 적은 돈이 아니지요. 그러나 아이들에게 월드컵의 감동을 현장에서 보여줬다는 것은 그 어떤 돈과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요즘도 TV에서 붉은 악마의 함성이 울려 퍼질 때면 아이들이 그 당시를 떠올리곤 합니다. 돈이야 살아가면서 천천히 벌면 되는 거지만 2002 월드컵은 다시 재연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돈의 유혹을 뿌리치고 아이들의 꿈과 미래에 희망을 건 그의 전설은 월드컵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되풀이되는데 이는 듣는 이들에게 한편의 잔잔한 ‘느림의 미학’을 들려주는 듯 합니다.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은 더러는 쫓기는 듯한 풍경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특히 적지 않은 구성원들이 한꺼번에 구내식당이라도 이용할라치면 더더욱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지요. 오늘 한번 색다른 점심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떨는지요. 절친한 동료와 함께 최근에 개통한 지하철을 타고 중앙로나 대전역에서 내려 중앙시장 인근에 위치한 중교 묘목시장을 둘러보는 나들이 한번 해보세요.

향기가 1000리까지 간다는 꽃나무 ‘천리향’도 단돈 5000원이면 이곳에서 살수 있지요. 갖가지 형태의 분재들도 이곳에서 구경할 수 있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중앙시장 노점에서 순대, 떡볶이, 튀김 등 이것 저것 골라 먹는 즐거움도 함께 맛볼 수 있지요.

늘 되풀이 되는 일상생활에서 한발 벗어나 다소 색다른 시도를 도모해보는 것도 더러는 우리네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요인이 됩니다.

점심시간에 가까운 서점에 들러 책을 고른다거나 사무실 근처 공원을 거닐며 봄의 나른함을 달래는 여유. 시간의 톱니바퀴 속에 내맡겨진 생활이지만 이 정도의 여유로움은 이따금 시도해 볼만 하지 않겠어요.

프랑스의 학자 피에르 쌍소는 저서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 ‘느림’이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삶의 선택에 관한 문제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이 우리를 서두르게 만들고 있는 이 사회와 우리가 자발적으로 그 요구에 따르고 있는 이 사회 속에서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절실하게 필요한 과제라고 말합니다.

피에르 쌍소는 느림의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로 ▲한가로이 거닐기 ▲신뢰하는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기 ▲권태에도 애정을 기울여 보기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글로 표현하기 ▲과거의 추억 되새기기 등등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느림이란 결코 철학적 어투가 아니며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는 생활방식의 하나인 것입니다.

오늘 퇴근길에 그저 동네 제과점에서 빵 한 봉지 사 들고 들어가는 당신의 발걸음 또는 봄 꽃 화분 하나 들고 있는 당신의 손길에 어느새 ‘느림의 미학’이 깃들어있는지도 모릅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세종시 50대 공직자 잇따라 실신...연말 과로 추정
  2. [현장취재]한남대 재경동문회 송년의밤
  3. 대전시주민자치회와 제천시 주민자치위원장협의회 자매결연 업무협약식
  4.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대전.충남 통합으로 세계 도약을"
  5. 천안시의회 김영한 의원, '천안시 국가유공자 등 우선주차구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 상임위 통과
  1. [취임 100일 인터뷰] 황창선 대전경찰청장 "대전도 경무관급 서장 필요…신종범죄 강력 대응할 것"
  2. [사설] 아산만 순환철도, ‘베이밸리 메가시티’ 청신호 켜졌다
  3. [사설] 충남대 '글로컬대 도전 전략' 치밀해야
  4. 대전시노인복지관협회 종사자 역량강화 워크숍
  5.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