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듯이, 기상재해도 바닥이 없고 끝도 없다.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자연재해의 90%가 날씨와 기후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한다.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괴짜 주인공처럼, 날씨는 한 순간 부드럽다가도 다음 순간에는 포악한 모습으로 다가와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기상재해의 예방과 경감업무는, 여러 측면에서 전쟁을 염두에 둔 군사작전과 닮은꼴이다. 첫째, 언제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전선이 펼쳐질지 모르기 때문에 24시간 철저한 감시가 필요하다. 서쪽에서 접근하는 날씨의 전조를 먼저 보기위해 서해 최북단 백령도나 사람이 살지 않는 북격렬비도에도 관측 첨병이 나가있다. 멀리 내다 보기위해 근무환경이 열악한 고산지대에 터를 잡고 관측하는 경우도 많다. 밤이나 낮이나, 평일이나 휴일이나, 아랑곳 않고 경계에 전념한다.
둘째, 첨단 장비를 이용한 정보수집과 분석능력이 힘이다. 수천 km 상공에서 디지털카메라처럼 구름의 동태를 포착하는 위성, 미사일을 추적하듯이 강수대를 탐지하는 레이더가 동원되는가 하면, 지구 반대편에서 관측한 자료도 고속통신망을 타고 순식간에 슈퍼컴에 입전되어 분석된다.
셋째, 전세(戰勢)는 상대적이다. 방어하는 지역의 억제력에 따라 피해규모도 달라진다.
일기예보와 기후예측 기술이 계속 발전하고 있기는 하지만, 산업발전과 정보화 진전으로 기상재해에 대한 사회의 구조적 취약성도 빠르게 심화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지하철이 새로 건설되거나 도시화가 확대되면, 강한 비로 인한 침수피해에 대한 도시의 내성이 떨어진다. 해안지역의 리조트나 항만시설이 확대되면, 강풍이나 해일로 인한 경제손실도 커진다.
첨단 전자통신 시설이 많아질수록 뇌전에 의한 기기 장애도 늘게 된다. 시설물의 설계기준, 재해위험지도, 대피시설과 비상이동수단을 확충하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환경과 조화를 이룬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실익이 될 것이다.
넷째, 유비무환 (有備無患) 이다. 기상예보의 정확도, 정밀도, 신속도를 높이는데 쓰이는 인력과 재원의 경제적 가치는 투자 대비 최소한 7배 이상이라고 세계기상기구는 밝히고 있다. 전투기 한대를 구입하고, 조종사 한사람을 배출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을 감안하여, 기상재해와 관련된 기술개발과 사회안전망 개선에 투입될 예산과 전문 인력의 규모를 다시 짚어 볼 일이다.
다섯째, 범국가적 협력이 필요하다. 호우경보나 태풍경보 등 기상특보가 방재기관에 전달되면, 방재시스템이 즉각 가동되어야 한다. 또한 이 정보들은 공신력 있는 언론매체를 통해 명료하고 신속하게 주민들에게 전달되어야 하며, 주민들은 어떻게 대피하고 무엇을 준비해야하는지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초중고 교과에 영어 수학보다 높은 비중으로 자연재해에 대한 대응요령이 다뤄져야 한다.
우리 주위에는,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이 대치하는 상황에 버금가는 긴장감을 가지고, 날씨와의 전선(戰線)을 매일매일 실감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연재해의 예방과 경감’이라는 표어를 내건 세계기상의 날(23일)을 맞이하여, 도처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땅에서 하늘에서 바다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날씨를 관찰하고 분석하여, 그 첩보를 빛의 속도로 필요한 곳에 전달하는 이들에게 감사와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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